[시론] 기업이 제 역할 하도록 돕는 게 上策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 행보가 눈에 띈다. 지난 10일에는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에서 열린 ‘신규 투자 및 상생협력 협약식’에 참석해 차세대 디스플레이산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15일에는 경기 화성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를 찾아 ‘미래 자동차 산업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17일에는 10개월 만에 긴급 경제장관회의를 열었다. 경제 상황의 엄중함을 지적하고 재정지출, 서민 주거 공급과 광역교통망 확대, 노후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등 건설 투자를 강조했다.

대통령이 뒤늦게나마 경제를 챙기는 모습은 다행스럽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 정책 폐기, 규제개혁, 노동개혁 등 경제 정책의 근본적 전환 없이 재정지출, 건설투자만 강조해 아쉬움이 크다. 재정건전성 훼손 우려가 큰 재정지출에 대한 강조는 500조원이 넘는 초대형 내년 예산의 국회 심의를 앞두고 있어 시기적으로 적절한지 의문이다. 건설투자를 강조한 것도 총선을 6개월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선거 포퓰리즘’이란 지적이 나올 수 있다.

대통령의 여러 지원 약속과 달리 산업현장에서는 갖가지 규제와 기업 옥죄기가 여전하다. 심지어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고쳐 국민연금의 경영간섭 여지를 확대하고,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도 고쳐 배임·횡령죄 기업인에 대한 경영권 박탈 가능성도 높이고 있다. 위기 수준으로 급락하고 있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투자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정부가 앞장서 지원하고 막힌 곳을 뚫어줘야 하는데도 기업 옥죄기만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은 2017년 9월을 정점으로 경기변동이 수축기를 지속하고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수축기가 2년째 지속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낙폭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다. 경기수축의 낙폭과 기간을 보면 경기는 이미 위기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추락하는 경기의 회복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투자와 수출 증가율은 마이너스를 지속하고 소비도 저조하다. 그 결과 올해 성장률이 2%도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를 이룬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GDP디플레이터 변동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해 디플레이션 초입에 진입한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장기불황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투자가 장기간 이뤄지지 않아 성장동력도 급격히 훼손되고 있다. 경기 확장기에는 과도한 거품을 방지하기 위해 경기 억제 정책을 추진하고, 경기 수축기에는 과도한 침체를 방지하기 위해 경기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1936년 케인스의 <일반이론> 이후 80년 역사의 거시경제학이 가르치는 경기 안정화 정책의 요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지난 2년 반가량 동안 경기안정화 정책은 이 같은 경기 안정화 정책과는 정반대로 추진되면서 경기 하락의 골을 깊게 하고 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의 획일적인 도입,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물론 수요 억제 중심의 부동산 안정대책, 가계부채 규제 강화, 금리 인상, 법인세 인상, 각종 반(反)기업 규제 강화 등 주로 경기 확장기에 경기를 억제하기 위한 정책들이 단기간 한꺼번에 도입됐다. 경기가 위기 수준으로 급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마 역대 최악의 경기 안정화 정책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는 왜 경제학의 가르침과 반대로 정책을 써 장기불황을 초래하고 있을까. 국회, 청와대, 정부 부처에 386 운동권 출신 경제 비전문가들이 포진하고 있어 고도의 지식을 요하는 경제 정책을 수립·집행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른바 ‘경제무지론’이다. ‘이념편향론’도 지적된다. 경기 동향과는 상관없이 좌파 이념에 부합하는 정책만 추진하고 있는 데서 나오는 말이다.

수축기에 접어든 경기를 활성화하면서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하는데, 전문가들의 그런 충고는 기업 편만 드는 우파적 주장이라고 외면하고 있다. 잘못된 정책을 고수하면 경제가 대붕괴로 갈 수 있다. 지금이라도 경기 수축기에 맞는 정통적인 경기 안정화 정책으로 대전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