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불구속 재판 확산에도 남아있는 '전관예우 트라우마'
법률제도는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며, 법은 곧 국가라 할 수 있다. 법률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제도의 기초에 해당한다. 그러나 현실은 암담하다 못해 처참할 지경이다. 특히 법조계에 뿌리 깊다고 하는 전관예우에 대한 일반적 확신은 철벽보다 공고하다.

문제의 뿌리는 구속제도의 역사와 깊이 관련된다. 사람을 구속할 때는 판사가 직접 대면해 변명할 기회를 주고 영장발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는 1995년 형사소송법 개정(구속제도 개선) 전까지 검사가 작성한 서류만 보고 영장발부 여부가 결정됐다. 결과적으로 구속은 매우 쉽게 이뤄졌다. 검사가 유죄판결은 마음대로 못 해도 구치소에 몇 달 넣어놓는 것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떠돌던 시절이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1995년 구속영장 청구 건수는 15만4153건, 발부 건수는 14만3665건, 구속기소는 10만9492건이었고, 1심 재판 결과 실형 선고는 3만4931건이었다. 네 명을 구속해 재판했는데 막상 실형을 받은 사람은 그중 한 명이다. 이 차이는 그 후 꾸준히 줄어 작년엔 청구 건수 3만65건, 발부 건수 2만4457건, 1심 재판 결과 실형 선고 1만8668건이 된다. 이제는 구속기소된 네 명 중 실형을 받은 사람이 세 명이다. 14만 명을 구속해놓고 시작해 대부분 풀어주던 재판에서 이제는 2만 명만 구속하고 시작해 그 대부분이 실형을 받는 재판으로 바뀐 것이다.

사람의 구속은 신체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침해한다. 교사, 공무원, 회사원 등 일정한 신분의 사람들은 이로 인해 2차적인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 자영업자는 구속되는 것만으로도 신용을 잃고 사업이 부도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가 구속되면 온 가족이 큰 시련을 겪게 되며 일단 구속을 벗어나려고 갖은 수단을 강구한다. 이때 브로커가 접근해 ‘어떤 변호사가 전관 출신이라 수사검사나 재판장과 친하다’며 거액을 요구하면 가족들은 사채를 얻어서라도 그 돈을 마련해준다. 과거 통계를 보면 알 수 있듯 본래 네 건에 세 건은 풀려났다. 브로커로서는 가만히만 있어도 성공확률 75%다. 한편 돈을 준 가족들은 그 돈이 실제 전달됐는지 검사나 재판장을 찾아가 확인할 수도 없는 일이다. 가히 브로커 전성시대였다. 그런데 브로커들이 퍼뜨린 전관예우 소문이 시장에 자리잡으며 실제 전관 출신 변호사에게 사건이 몰리는 일이 벌어졌다. 많은 전관변호사들이 이런 시장 왜곡을 조용히 즐겼다.

결국 피고인 가족으로서는 당초 구속할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사람을 구속해 놓고 석방을 빌미로 한통속인 법률가들이 돈을 뜯어가 나눠 가진 것으로 믿게 된다. 이 구조는 인질강도와 비슷하다.

1995년의 형사소송법 개정은 우리나라 형사소송 실무에서 가히 혁명적인 변화였다. 이전까지 변호사들은 10만 명 이상의 구속된 피고인을 풀어주는 것으로 성공보수를 챙겼다. 현재는 소위 법률시장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형사사건 시장은 초토화됐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구속제도가 올바른 방향으로 개선됐고, 이제는 불구속 재판이 원칙으로 자리잡았다는 뜻이다.

일단 구속된 사람은 누구나 실제 무죄 여부를 떠나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다. 억울하더라도 자백해서 집행유예를 받아 석방될 것인지(과거엔 확률 75%였다), 아니면 끝까지 무죄를 주장해볼 것인지(반성하지 않는다고 실형이 선고될 확률이 높았다)…. 많은 변호사들이 자백을 권유했다. 공정할 것으로 믿었던 법정에서 억울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허위 자백을 하고 집행유예를 받아 풀려난 사람들의 마음속에 맺힌 한은 평생 씻어내기 어렵다.

구속된 사람의 가족을 다섯 명이라고만 가정해도 수십 년 동안 매년 수십만 명이 이런 일을 당했다. 이런 개인적 경험이 뭉쳐 형성된 사회적 편견은 공고할 수밖에 없다. 구속제도 개선 이후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 통계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잊혀질 만하면 터져 나온 전관 스캔들로 인해 국민들이 이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관련한 편견이 해소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반성과 노력이 더 필요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