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국민연금의 ‘공기업 투자 및 의결권 행사 현황’은 정부 영향력 아래 있는 국민연금이 ‘정치적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국민연금은 ‘낙하산’ 인사의 공기업 임원 선임에 줄줄이 찬성표를 던지고 ‘탈(脫)원전’ 정책으로 실적이 악화된 전력공기업 지분을 늘려 운용 손실을 자초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 노후자금의 선한 권리자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 대선캠프에서 활동한 인사 등을 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 한전KPS, 한국전력기술의 감사 및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데 모두 찬성했다. 최근 3년간 공기업의 주주총회에서 316개 의결 안건 가운데 반대표를 던진 비율은 5.1%(16개)에 불과했다. 반면 민간기업에 대한 반대 의결권 행사 비율은 17.4%에 달했다. 민간 기업엔 엄격하고 공기업에는 느슨한 이중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탈원전 정책으로 비용이 덜 드는 원자력 비중이 줄어 한전 등의 실적 악화가 뻔히 예상되는데도 투자를 늘려 손실을 키웠다. 에너지 공기업들이 대거 적자를 낸 탓에 4년 전에 비해 9000억원 넘는 평가손실을 기록했다. 국민연금은 최근 한전 이사회에서 손실 확대가 불가피한 한전공대 설립안도 지지했다. 기업가치 훼손이 분명한 경영 의사결정에 제동을 걸기는커녕 ‘거수기’ 역할을 하며 정부와 코드 맞추기에 나선 것은 국민에 대한 배임행위나 다름없다.

이처럼 국민연금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 원칙)를 앞세워 기업 경영에 적극 개입하면 ‘연금 사회주의’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대한항공 경영권 개입에서 보았듯이 국민연금이 민간기업 지배구조를 흔드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 국민연금을 정치적 목적이나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이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