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논설위원
[천자 칼럼] 우리말 해치는 北의 막말

573돌 한글날을 맞아 한글의 고마움을 다시금 새기게 된다. 글은 말을 담는 그릇이다. 한글을 지키고 가꾸는 것 못지않게, 글로 담아내는 말의 품격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한글이 우수하다 해도 글로 표현되는 말이 천박하면 덩달아 저급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 대남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가 그제 쏟아낸 막말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상전의 요구를 받아 무는 비굴한 추태” “염통도 쓸개도 다 섬겨바치는 굴종 행위” 등 거칠고 상스런 표현 일색이다. ‘우리민족끼리’라는 간판을 내걸고 퍼부을 소리인지 묻고 싶다.

북한이 ‘김씨 왕조’ 체제 유지를 위해 대내외 선전선동에 열 올리면서 맹목적 적대감과 증오를 자극하는 표현을 남발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남북한 정상회담 등 유화 무드 속에 잠시 잠잠하던 막말이, 올 2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강도와 빈도가 부쩍 높아졌다.

북한은 청와대를 향해 ‘겁먹은 개’ ‘삶은 소대가리’ ‘오지랖’ 등의 악담을 퍼붓고, 미사일 도발 직후에는 “새벽잠까지 설쳐대며 허우적거리는 꼴”이라고 조롱했다. 우리 군을 ‘바보, 똥, 도적’에 비유했고, 보수야당에는 ‘구더기’ ‘구미여우’ ‘역도의 특등졸개’라고 비난했다. 북한을 잘 아는 박지원 의원조차 “설태 낀 혓바닥을 놀려댄다”는 독설을 들었다.

하이데거가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했듯이, 막말은 그 사람의 인격과 정신세계를 의심케 한다. 북한의 대남성명은 김정은을 거친다는 게 탈북자들의 전언이다. 밑에선 충성경쟁을 하고, 김정은이 첨삭·결재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정부는 “우리와 쓰는 언어가 다르다”며 전략적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막내가 부리는 앙탈”(정경두 국방부 장관)이라며 애써 외면하기도 한다.

그럴수록 북한은 독설과 막말의 강도를 높여간다. ‘줴쳐대다(지껄이다)’처럼 우리말에 없거나 ‘똥줄기를 갈기는 주제에’ 등 적개심 가득하고 저열한 표현도 너무 잦다. 듣는 국민들은 불쾌하고 자존심 상한다. 막말을 자꾸 듣다보면 내성이 생겨 우리말을 오염시키고, 자라나는 세대의 언어습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외래어 침투나 비속어 남발 못지않게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정치인의 막말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듯, 북한의 ‘막말본능’은 통일의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제라도 따끔하게 고쳐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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