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총리의 '벼랑끝 전술' 먹힐까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합의 없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저지하려는 의원들의 시간과 노력을 빼앗으려 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겉으론 우려하지만 속으로는 마지막 결전의 신호를 반길지도 모른다.

존슨 총리는 지난주 영국 의회를 9월 11일 폐회하고 새로운 회기를 유럽연합(EU) 이탈 시한 2주 전에 맞춰 시작하는 방향으로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승인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갑작스런 이탈을 막기 위해 의회에 주어진 기한은 9월 2~11일, 10월 14~31일로 짧은 시간이다. 이런 발표에 파운드화는 미국 달러화 대비 약 0.5% 하락했다. 7월 존슨 총리가 취임한 이후 파운드화 하락률은 2%를 넘어섰다. 파운드 가치는 이달 들어 1980년대 수준으로 추락했다.

존슨 총리는 수차례나 기한을 연장한 브렉시트 협상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나선 인물이다. 의회 폐회 소식이 우려되지만 한편으로 존슨 총리의 벼랑 끝 전술이 투자자들이 간절히 바라는 ‘(브렉시트의) 명확성’을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의회 중단 카드 꺼낸 존슨

영국이 2016년 6월 국민투표에서 EU 탈퇴를 결정한 뒤 영국 기업들은 브렉시트 이후 무역과 각종 규제에 관한 EU와의 약속이 어떤 형태로 마무리될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 기업의 투자 통계에서도 이런 현상은 분명히 나타난다. 물론 중국발 세계 경제 침체의 영향도 있지만 설비 투자 연기나 재고 확대를 피할 수 없다는 데이터가 이어지고 있다.

테리사 메이 전 총리의 브렉시트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이유는 다음과 같은 구조에서였다. 즉 EU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다수당은 브렉시트의 최종 결정 권한이 있지만 그러기 위해선 정당과 계파를 초월한 지지표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의원들에게는 실행에 옮기려는 강한 동기가 작동하지 않았다. 이탈 기한을 계속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존슨 총리는 하지만 다음 총선에서 기회를 잡기 위해 판도를 바꿀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였다. 브렉시트를 지지하고 추진한 경력과 무모한 의사결정을 한다는 평판은 존슨 총리가 합의 없는 이탈에 수반하는 경제적 영향과 정면으로 맞설 각오가 돼 있다는 점을 확실히 보여준다.

브렉시트 방향, 명확해질 수도

물론 의회의 판도를 감안하면 이는 현실성 있는 시나리오가 아니다. 기한을 재연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름 휴가와 10월 31일 브렉시트의 데드라인을 고려하면 결정할 시간은 거의 남지 않았다.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는 의원들이 시기를 잘못 잡으면 ‘뜻하지 않게’ 합의 없는 탈퇴를 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의원들은 이제 더 많은 압력을 받고 있고 억지로라도 견해차를 좁힐 수 있을지 모른다. 구체적으로 존슨 총리가 유럽 지도부로부터 양보를 끌어내거나 의회를 해산하고 다시 총선을 하는 쪽으로 의견 대립이 해소될 가능성이 있다.

합의 없는 탈퇴 우려로 파운드화가 떨어질수록 의원들에게 브렉시트를 합의하도록 압박이 커지는 상황은 EU 이탈 문제의 역설이다. 투자자들이 현재 인식하는 것 이상으로 존슨 총리의 전략에 감사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정리=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

이 글은 존 신드루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가 쓴 ‘A Brexit Showdown Could Be What Investors Need’를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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