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증권범죄, 부당이득 환수 손봐야
10년 전 개봉한 ‘작전’과 올해 상영한 ‘돈’ 등 주가조작 범죄를 다룬 영화들은 범인이 재판에 넘겨져 그동안 주가조작을 통해 얻은 수익을 환수당하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권선징악적 결말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

검찰에 따르면 올 1분기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은 23명 중 9명이 부당이득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전체의 39.1%에 해당한다. 물론 죄 없는 사람이 재판에 넘겨졌다면 당연한 결과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문제는 자본시장법을 위반한 범죄행위 전반에 대해 유죄가 인정됐음에도 불구하고 부당이득이 ‘0원’으로 계산된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당이득이 없는 것으로 판결된 사건도 대부분 부당이득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단지 “부당이득을 정확히 계산할 수 없다”는 점을 판결 근거로 들고 있다. 형법에서는 책임주의 원칙에 근거해 저지른 잘못 이상의 형벌을 주지 않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이에 따라 피고인들이 금융시장에서 얻은 총이익 중 부당하게 얻은 부분을 명확히 분리해 계산하기 어려우므로 벌금을 정확히 산정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가령 허위성 정보를 퍼뜨리거나 공시 위반 등 주가조작을 통해 특정 종목의 시세를 끌어올린 뒤 매도해 차익을 거둔 경우를 생각해보자. 상식적으로는 이런 범죄행위로 인해 피고인의 주머니에 들어간 돈을 전부 되찾아오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해당 산업이 당시 호황기였다거나 다른 매수 세력이 존재하는 등 주가조작 외 시세 상승 요인이 혼재됐다면 법원은 이런 기타 요인으로 인한 시세 상승분을 걸러내고 부당이득 부분만 분리해 계산하도록 요구한다.

이에 따라 부당이득 환수의 초점은 범죄행위 유무와 별개로 부당이득 계산의 ‘정확성’에 초점이 맞춰진다. 부당이득 계산이 조금이라도 부정확하다고 판단되면 혐의는 인정하지만 부당이득은 환수하지 않는 판결이 내려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문제는 ‘정확한’ 부당이득 계산이 애초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자본시장에는 항상 가격을 움직이는 수많은 외생 변수가 있어 이를 걸러내기 위해 범죄행위가 없었을 경우의 정상가격을 추정하게 된다. 이런 정상가 추정에는 재무 분야에서 제안된 여러 가격결정모형을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각 모형의 정합성 문제뿐 아니라 특정 모형을 받아들이더라도 모수 추정에 따른 오차를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모두 동의할 수 있는 ‘단일한’ 부당이득 규모를 산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점을 악용해 검찰 측이 제시한 부당이득 규모의 정확성을 집요하게 파고들면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도 법망을 피해가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징역 몇 년 살고 나오면 남는 장사’라는 인식까지 팽배해 있다고 한다.

이를 방지하려면 애초 부당이득 환수의 논리를 재정립해야 한다. 통계학의 추정론을 차용해 부당이득 환수 방법을 생각해보자. 형법에서 유무죄를 판단하는 근간에는 귀무가설과 대립가설의 설정이 있다. 일단 범죄가 인정된다면 무죄라는 귀무가설이 기각된 것이다. 따라서 부당이득의 계산 역시 범죄 유무와 독립적으로 계산할 것이 아니라 연동해 계산해야 한다. 무죄가 인정되면 부당이득은 당연히 ‘0원’이 되지만, 유죄가 인정되면 부당이득의 계산에서는 귀무가설을 교체해 그동안 얻은 시세차익 전체를 부당이득으로 봐야 한다. 그런 뒤 이를 기각할 수 있을 정도로 ‘통계적으로 유의한’ 기타 변수의 영향력을 제외해 남은 이득을 최종 부당이득으로 보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해 보인다.

자본시장은 신뢰를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한다. 부정한 방법으로 취한 이득을 적절히 환수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다수의 건전한 투자자에게 큰 불신을 주고 시장 전반의 발전을 저해한다. 다행히 금융위원회와 검찰이 ‘부당이득금 산정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그러나 작년에 발의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조속한 법 개정이 없으면 수많은 금융범죄를 눈 뜬 채로 계속 지켜봐야 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