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이순신 장군이 편히 쉴 수 있겠나
서거한 지 422년 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요즘 바쁘다. 수시로 소환되고 있어서다. 문재인 대통령은 명량해전의 ‘12척 배’, 거북선횟집, 첫 승전지 저도(猪島) 등으로 이순신을 떠올리게 했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도 “지금 문재인 정부는 서희와 이순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거들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거북선 모형을 배경삼아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났다.

‘이순신 마케팅’이라 할 만하다. 일본 수출규제에 구국(救國)의 각오로 임한다는 연상효과를 기대한 것일까. 의도한 게 아니라고 해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정치적 함의를 갖는다. 온라인에는 ‘문재인=이순신’이란 글까지 보인다.

그런데 어색하고 황당하다. 청와대를 불세출의 구국영웅에 빗댄다면 선조와 원균은 누구에 비유해야 할까. 온 백성과 국토가 유린 당한 임진·정유왜란(1592~1597)은 순전히 무대책·무방비·무전략의 대가였다. 율곡 이이가 “나라가 나라가 아닙니다”라고 상소했던 대로다. 그런 곤궁을 초래한 책임은 전적으로 무능과 시대착오의 조선 조정에 있다.

40년 뒤 병자호란(1636)도 판박이다. 국제정세 격변기에 철저히 무지한 채, 관념적 명분이 실리적 사고를 가렸다. 그 결과가 겪지 않아도 될 전쟁과 삼전도의 굴욕이었다. 압록강을 건넌 청군은 닷새 만에 한양에 들이닥쳤다. 전령보다 더 빨랐다. 이 역시 일찌감치 징후와 경고가 있었지만 모두 무시했다. 작년 말부터 감지된 지금 일본과의 갈등 전개과정이 그때와 닮은 꼴이라면 지나친 해석일까.

한명기 명지대 교수의 <병자호란>에 따르면 반정(反政)으로 정권을 잡은 인조는 과거청산과 개혁을 내걸고 광해군 때 인사들을 줄줄이 숙청했다. 명·후금(청)과의 외교 교섭을 전담해온 평안감사 박엽, 의주부윤 정준까지 처형했다. 신흥강국 청과의 접점이 사라진 것이다. 지금 외교부에 대일 외교를 담당하는 ‘재팬 스쿨’의 씨가 마른 것과 무엇이 다를까.

세계적인 석학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라고 갈파했다. 하지만 조선은 전무후무한 국난을 겪고도 교훈을 찾기는커녕 덮는 데 급급했다. 뒤이은 것은 당쟁, 세도정치, 쇄국에 이은 망국이었다. 육당 최남선이 “조선은 망하는 데도 실패했다”고 탄식한 그 모습이다.

거꾸로 이순신과 유성룡의 <징비록>을 철저히 연구한 것은 이순신에게 ‘23전23패’를 당했던 일본이었다. 세키 고세이의 <조선 이순신전>(1892), 해군 중장 오가사와라 나가나리의 <제국해군사론>(1898) 등은 이순신을 영국 넬슨을 뛰어넘는 ‘세계 제1의 해장(海將)’으로 기록했다. 일본 해군은 이순신의 학익진을 연구해 1905년 러시아 발트함대를 격파했다. 실패에서 배운 것이다.

현 정권에는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단재 신채호의 경구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이 말은 주로 야당을 친일파로 싸잡아 공격하거나 일본을 상대할 때 쓴다. 하지만 ‘왜 미리 대비 못했나’ ‘왜 그토록 무능하고 무력했나’라는 왜란·호란과 망국의 역사를 잊으면 진짜 미래가 없을 것이다.

일본 아베 정부가 외교로 풀 문제를 수출 규제로 압박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와중에 “한·일 갈등이 총선에 유리하다”는 집권여당 싱크탱크(민주연구원)의 보고서는 더 참담하다. 국제정세에는 소경이고, 나라가 무너져도 권력만 잡으면 그만인 조선 당쟁꾼을 21세기에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국가 리더라면 대중의 시야를 뛰어넘는 숙고와 비전이 있어야만 한다. 이순신의 승전지 저도를 봤으면 그 인근에 조선수군 2만 명이 수장된 거제 칠천량도 돌아봐야 한다. 이순신 같은 영웅이 나오지 않아도 되게끔 국가를 운영하는 게 최선의 리더십이다.

지금 정부가 할 일은 이 격변기에 국민과 국익을 지킬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래야 이순신 장군도 편히 쉴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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