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일본 경제보복의 책임을 국내 대기업에 전가하는 발언이 줄을 잇고 있다. 핵심 소재·부품의 국산화가 안 된 것은 모두 대기업 탓이라는, 황당한 궤변 일색이다. 엉뚱한 곳에 화풀이하는 ‘정치 갑질’이 따로 없다. 여기에 고위 관료까지 맞장구를 친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암담해진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한국의 소재·부품기업엔 거의 지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의 소재·부품기업을 1위로 띄워 올리는 역할을 했다”는 독설을 쏟아냈다. 기업 현실을 모르는 건지 알고도 억지를 부리는 건지 당혹스럽다. 일류 소재·부품을 쓰더라도 살아남을지 장담할 수 없는 게 글로벌 경쟁이다. 게다가 핵심 소재·부품에서 한·일 간 현격한 기술력 격차를 안다면 이런 발언은 나올 수 없다.

“소재·부품 개발에는 중소기업의 역할이 크다”며 “대기업의 기술 탈취가 문제”라는 조배숙 민주평화당 의원 발언도 마찬가지다. 기술 축적을 요구하는 핵심 소재·부품은 장기간 투자가 필수적이다. 특히 소재는 기초과학부터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영역을 구분짓기도 어렵다. 더구나 핵심 소재·부품의 경우 국내에서는 기술 탈취가 아니라 탈취할 만한 기술조차 없다는 게 문제다.

그런데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은 “국내에서 개발돼도 대기업이 써주지 않으면 안 된다”며 “기업들이 크게 각성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대기업이 구매까지 보장하려면 연구개발 단계부터 참여해야 한다. 하지만 산업부는 대기업의 정부 연구개발 프로젝트 참여를 배제하고, 연구개발 투자 세액공제를 줄이고, 벤처 투자를 제한하는 조치들이 취해졌을 때 침묵으로 일관했다. 오랫동안 소재·부품을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규정해 정책 실패를 자초했던 것도 산업부다. 현실도 제대로 모르는데 올바른 대책이 어떻게 나오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