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정경유착' vs '노정유착'
유럽의 격변기 1980년대 폴란드의 ‘자유연대노조’를 이끌었던 레흐 바웬사는 1990년 대통령이 됐다. 대중적 인기가 높은 노조위원장 출신에 노벨평화상 수상자였지만 연임에는 실패했다. 1995년 퇴임 때 지지율은 0.6%. 경제실패 영향이 컸다. 어디서나 정치인의 지지율이란 게 뜬구름 같은 것이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국민 스타’의 퇴임 지지율 0.6%에 특별히 주목했던 정치인이 브라질 전 대통령 룰라 다 실바였다. 바웬사처럼 노조위원장을 지낸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0.6%를 주목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바웬사를 타산지석으로 제대로 봤던 것일까. 8년 집권 후 룰라의 퇴임 지지율은 86%에 달했다. 국제 환경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회색분자’ ‘변절자’라는 비판까지 감내하며 좌·우파를 두루 수용하는 실용노선을 밟은 결과였다. 노조위원장 경력이 같은 베네수엘라의 현직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가 반미 좌파 노선을 고수하면서 나라가 부도지경에 처한 것과도 비교된다.

노조나 노동운동가들이 ‘정치적’인 것은 역사가 말해준다. 노조운동이 현실 정치와 어떻게 거리를 두고, 건전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느냐가 선진사회를 판가름하는 척도 중 하나라고 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1980년대 폴란드나 ‘1987년 체제’ 이전 한국 사회에서는 ‘민주화’ 요구가 컸다. 어떻게 보면 노정(勞政)연대도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하지만 사회가 성숙해지고 성장·발전의 축도 다원화된 상황에서 ‘노정유착’이라면 뭔가 어색한 투쟁방식이다. 정당과 노조가 공식 연대를 하고 선거도 거쳐야 당당할 것이다. 아니면 노동자당을 세우든지….

정치권과 사용자 측의 은밀한 사이가 ‘정경유착’의 폐단을 낳았다면, 정치집단과 노조의 비공식 유대는 또 다른 기득권 간 야합 이미지를 풍긴다. 전자가 ‘밀실의 이권’을 연상시킨다면, 후자는 노골적인 ‘사회적 뇌물’ 수수 의혹을 남긴다.

울산시가 양대 노총 건물에 140억원을 지원키로 하면서 뒷말이 나온다. 각각 70억원인데, 민노총 회관은 신축이다. 어려운 지역경제를 지적하며 “무리한 재정지출 아니냐”는 비판이 들린다. 때마침 국회에서는 “노동개혁특별위원회를 설치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제3당 원내대표의 본회의 제안이다. 한쪽은 노조를 껴안고, 한쪽은 개혁 대상으로 본 듯하다. 내년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어느 쪽을 지지할까.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