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전망] 安美經美 지렛대 전략 필요하다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그 꿈같은 시절이 작별을 고하고 있다. 글로벌 패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한판 전쟁을 벌이면서 우리의 미래 선택지에서 ‘양다리 걸치기’ 옵션이 사라졌다. 탈냉전 이후 30년, 한국은 미국이 구축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만끽하며 안보에 대한 중·장기 전략도 없이 경제적인 성공에 몰두해 왔다. 안보와 경제는 분리해도 된다는 일종의 자기 최면에 빠져 중국 특수를 여과 없이 누려온 셈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에 공급해 온 제도와 가치, 안보, 경제 원조에 관세 혜택까지 모두를 회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양자 협상을 통해 상대국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정도에 따라 거둬들인 양보의 일부만 되돌려주는 기막힌 ‘무임승차 퇴치 전략’을 펼치고 있다. 동맹국도 예외가 아니다. “혜택만 누리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 동맹은 적에 가깝다”며 무임승차자 색출에 나섰다.

인류 역사는 안보가 경제와 분리돼 존재한 적이 한순간도 없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상품이 국경을 건너지 못하면 군대가 진격했고, 나라가 정복당하면 온 국민이 노예 생활을 면치 못했다. 작년 철강에 이어 올해 자동차를 겨누고 있는 미 무역확장법 232조 안보조항도 그런 배경에서 만들어졌다. 전쟁 중인 적국과는 무역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입법 취지였다. 232조 조사 사례는 트럼프 이전에 26차례나 있었지만 실제 금수(禁輸)가 된 대상은 적성국 이란과 레바논의 원유가 전부였다. 트럼프는 지금 이 법을 동맹국에도 적용하고 있다. “너의 행복이 우리의 행복임을, 아니 네가 미국의 적이 아님을 입증하라”는 것이다.

미국의 이 같은 입장 변화는 미·중 무역전쟁에서 잘 드러난다. 미국의 십자포화가 5G(5세대) 표준 선점에 나선 화웨이를 정조준하면서 전투는 전면전, 나아가 국제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반(反)화웨이 전선에 일본, 영국, 호주 등 동맹군이 속속 도착하면서 백악관은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워싱턴은 정부 보조금 철폐 요구와 함께 지식재산권 위반을 더 가혹한 형법으로 다스려야 한다며 중국 압박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중국제조 2025’ 핵심 기업들을 거래 제한 블랙리스트에 추가하면서 제2, 제3의 화웨이에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중국과 북한, 러시아, 이란, 시리아 등에 대해서도 제재 수위를 높이며 이들과 거래하는 각국 정부와 다국적 기업들을 내리칠 철퇴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동안 ‘전략적 모호함’으로 일관해 온 한국 정부로서는 곤혹스러운 ‘진실의 순간’을 맞게 됐다.

우리 기업들도 딜레마에 빠졌다. 미국을 따르자니 돈이 울고, 가만히 있자니 미국의 보복이 두렵다. 어정쩡한 태도로 눈치만 보다가는 미·중이 휘두를 안보라는 칼날에, 혹은 소비자 불신의 덫에 걸려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중국 노출이 큰 기업일수록 글로벌 가치사슬을 점검하고 안보를 포함한 위험요인을 정밀하게 진단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정부도 안보에 대한 해석을 더 엄격하게 해야 한다. 수많은 기술 기업이 오늘도 중국에 팔려나간다. 핵심 기술을 가진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거액에 스카우트돼 한국의 기업과 연구소, 대학이 평생 축적한 기술을 중국에 통째로 넘기고 있다. 최근 스탠퍼드나 버클리 등 미국 대학들이 중국으로부터 연구비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산업 스파이의 범위를 확대하고 처벌을 강화해 기술 유출을 선제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미·중 패권전쟁의 시대, 우리 정부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흔들림 없는 안미경미(安美經美·안보도 경제도 미국)를 지렛대 삼아 당당하게 협중(協中·중국과의 협력)을 추구하는 일본의 지혜와 용기가 부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