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문재인 정부가 내야 할 용기
“노동계도 우리 사회의 주류라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투쟁이 아닌 상생으로 존중을 찾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일 근로자의 날에 띄운 메시지다. 며칠 뒤 만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대통령이 많이 다듬어서 한 말씀”이라고 했다. “(노동계에 대해) 답답하고 끓어오르는 게 많다. 언제까지 받아줄 수는 없다”고도 했다.

왜 아니겠는가. 문재인 정부가 각별하게 챙겨온 노동계, 그중에서도 핵심 세력인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이반(離叛)이 심각하다. “해도 너무하게 노동계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었다”는 기업들의 하소연과 절규를 넘겨들으면서까지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민주노총 요구를 받아줬는데도 말이다. 그런 정부에 ‘고맙다’는 말은커녕 추가 요구가 끝이 없고, 관철 방식은 안하무인(眼下無人) 지경이다.

지난달 3일 국회에서 일어난 사건이 단적인 예다. 민주노총은 시위대를 구성해 국회 본청 진입을 시도하며 담장을 부쉈고, 저지하는 경찰들과 취재기자를 폭행했다. 실정법과 공권력을 대놓고 무시하는 ‘활극’을 펼친 이유가 당당했다.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논의에 들어간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방안 입법을 ‘반드시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청와대에서 “기가 질린다”는 말이 나온 건 당연했다. 이 안건에 대해 노동계가 의견을 내놓고 조율하게끔 열어놨던 ‘마당’(경제사회노동위원회)을 걷어차고선 완력 행사에 나선 것이어서다. 문 대통령이 민주노총 위원장을 청와대로 초대해 ‘경사노위에 참여해달라’고 공개 부탁까지 한 터였다. 민주노총 위원장은 그런 대통령에게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 중단, 투자개방형 병원 및 ‘광주형(임금 거품 제거) 일자리’ 철회 등 일곱 가지 ‘추가 청구서’를 내밀었다. 항목은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두둑한 임금과 고용안전장치가 보장돼 있는 ‘기득권’은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우리나라의 일자리 사정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통계청은 15일 발표한 4월 고용동향 보고서에서 실업률이 ‘19년 만의 최고치’로 높아졌다고 밝혔다. 이렇게 된 데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유연성을 잃은 고용노동환경이 기업들의 생산기지를 국내가 아닌 해외로 내몬 지 오래다. 현대자동차에서 요즘 벌어지고 있는 모습은 그런 전형을 보여준다.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팰리세이드’ 주문이 몰려 모처럼 활기를 되찾나 했는데, 노조가 ‘다른 차종 일감을 지켜야 한다’며 딴죽을 걸고 나섰고 회사 측은 속수무책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한숨 쉬는 노동계 원로가 많다. 통일중공업 노조위원장과 민주노동당 대표를 거쳐 경사노위를 이끌고 있는 ‘노동계 대부’ 문성현 위원장은 “30, 40년 전으로 돌아가 다시 노동운동을 한다면 달리 했을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대우자동차 노조위원장을 지낸 홍영표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노동계, 특히 민주노총은 우리 사회의 주체로서 사회적 책임을 함께 나누고 짊어져야 한다”는 이임사를 남겼다.

선배들의 고언(苦言)이 아니더라도, 민주노총 내부에서 “지금 같은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퍼지고 있다. 민주노총 주력 부대인 금속노조가 최근 ‘미래형 자동차 발전 동향과 노조의 대응’이라는 272쪽짜리 보고서를 내고 노사정포럼을 공동 주최한 것은 주목되는 변화다. 노조 안팎에서 싹트고 있는 이런 변화 움직임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제도적 자극이 필요하다. 선거를 거쳐야 하는 노조 지도부는 속성상 강성(强性)을 띨 수밖에 없다.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절실한 이유다.

노조가 변화하게 하려면 기업 경영진에 견제장치를 넓혀주는 등 ‘퇴로’를 열어야 한다. 독일 사회민주당 정부 시절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그랬고, 지금 프랑스의 개혁을 이끌고 있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그렇다. 이들은 노조의 고통 분담을 제도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인기 없는 정책’을 밀어붙였다. 마크롱은 그로 인해 여론 지지도가 20%대로 내려앉았지만 “지불할 만한 값을 치르는 것”이라고 의연해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런 용기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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