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투자개방형 병원으로 선정됐던 중국 뤼디그룹의 제주 녹지국제병원 개설이 끝내 무산됐다. 제주특별자치도는 17일 “조건부 허가(외국인만 진료·3개월 내 개원) 요건을 지키지 못했다”며 녹지국제병원 허가를 취소했다. 2002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동북아 의료 허브’ 구상에 따라 추진된 투자개방형 병원이 17년 동안 헛바퀴만 돌린 꼴이 됐다.

의료 분야의 혁신과 서비스 개선을 자극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투자개방형 병원이 문도 열지 못하고 좌초한 것은 예고된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문재인 정부가 투자개방형 병원을 마땅치 않아 했고, 제주도는 일부 시민단체의 눈치를 보다 ‘반쪽 허가’를 내줬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몰려 있는 의료산업의 족쇄를 풀어 신(新)산업으로 키우겠다던 투자개방형 병원의 본래 정책 취지가 사라졌다. ‘영리병원’과 ‘의료 공공성 훼손’이라는 정치적 선동만 난무했다.

투자개방형 병원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소위 ‘영리병원’이라는 투자개방형 병원이 ‘의료 민영화(영리화)’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치료비가 급등해 저소득층이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받을 기회를 잃게 된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의 타당성을 짚기에 앞서 먼저 해결해야 할 게 있다. 영리병원과 의료 민영화 등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스며든 ‘표현 왜곡’을 바로잡는 것이다. 영리병원이란 돈을 벌고 이윤을 남기는 병원을 의미한다. 하지만 일부 국·공립병원을 제외한 동네 병·의원과 대학병원 등 사실상 거의 모든 병원이 영리를 추구한다. 돈을 벌어야 의료인에게 월급을 주고 시설을 유지·보수해 병원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영리·비영리 병원’ 이분법은 투자개방형 병원에 부정적이고 혐오적인 이미지를 주입하기 위한 악의적인 왜곡이다. “영리 추구는 나쁘고, 탐욕스러운 것”이라는 선동에는 자유시장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근본부터 훼절하겠다는 정치적 계산이 드러난다.

‘의료법’은 의료기관 설립·운영 자격을 의사, 국가, 지방자치단체, 비영리법인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걸 모든 사람에게 개방해 누구든 인력, 자본 등 일정 요건을 갖추면 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투자개방형 병원이다. 미국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 라오스 등 사회주의 국가들도 허용하고 있다. 대규모 외부 투자를 통해 의료 질(質)을 높이고 의료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표방하며 국가보건의료서비스(NHS)를 통해 ‘무상의료’를 시행 중인 영국도 투자개방형 병원을 통해 비효율적인 공공의료를 보완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 의료비가 급등했다는 얘기는 나온 적이 없다.

최근 2~3년 새 국내에서 임플란트 시술, 라식 수술 비용 등이 크게 싸진 것은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벌인 병원들의 영리활동 덕분이다. ‘비영리’는 선하고 ‘영리’는 악하다는 반(反)시장적 선동으로 손해보는 것은 의료 수요자인 국민이다. 공자는 “올바른 정치는 이름을 바로 세우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영리병원’ ‘의료 민영화’ 등 정치적 선동이 다분한 표현 왜곡은 즉각 바로잡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