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R의 공포' 부추기는 인간 본능들
돌아온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R의 공포는 지난해 이후 증시가 하락할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용어다. 이번에도 친절한 해설이 붙는다. 미국 경기 하락 가능성과 중국 및 유럽의 경기 둔화가 ‘공범’이라는 것이다.

각국 중앙은행의 움직임에서 긴장한 모습이 엿보인다. 지난달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를 동결했고 독일과 일본의 장기금리는 다시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원유와 원자재 값도 약세다. 분위기가 더 나빠지면 금융위기용 처방전인 ‘초(超) 저금리’ 유동성 공급정책을 내놓을 태세다. 하지만 약발은 예전 같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비관론자는 세계 경제가 ‘일본식 복합불황’으로 간다고 주장한다. 이외에도 여러 나쁜 시나리오가 경고음을 내고 있다. 우리들의 공포본능이 이에 반응한다.

스웨덴의 예방의학 교수인 한스 로슬링은 《Factfulness(사실 충실성)》라는 저서에서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를 해부한다. 그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대표적인 인간의 본능으로 △간극본능(세상은 둘로 나뉜다는 오해) △부정본능(세계는 점점 나빠진다는 오해) △공포본능(지구가 종말을 맞이한다는 오해) △일반화본능 △비난본능 등을 제시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로슬링 교수의 책에 실려 있는 질문을 풀어보자. 편의상 그가 출제한 13문제 중 3문제만 소개한다.

①오늘날 세계 모든 ‘저소득 국가’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여성은 얼마나 될까. ⓐ 20% ⓑ 40% ⓒ 60%

②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 비율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 거의 2배로 늘었다. ⓑ 거의 같다. ⓒ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③전 세계 30세 남성은 평균 10년간 학교를 다닌다. 같은 나이의 여성은 평균 몇 년간 학교를 다닐까. ⓐ 9년 ⓑ 6년 ⓒ 3년

정답은 ⓒ, ⓒ, ⓐ다. 14개국 1만4000명에게 질의한 결과 13문제 중 평균 2문제를 맞혔다. 짐작했겠지만 지식층, 정치인, 노벨상 수상자와 의료계 그룹이 가장 형편없는 점수를 받았다. 침팬지의 무작위 답보다 낮았다. 세상을 판단할 중요한 ‘팩트(fact·사실)’에 대한 지식층의 무지는 심각하다. 이런 사람들이 주요 의사결정이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상상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일례로 세계 불경기 공포를 부추기는 논리를 분석해 보자.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IMF)은-이들도 종종 틀리지만- 미국 경제가 2018년 2.9%에서 올해 2.6%, 유럽은 1.6%에서 1.5%, 일본은 0.8%에서 0.9%, 중국은 6.6%에서 6.3%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진국 그룹의 성장률 전망치는 4.6%다.

올해 전망치를 조금 낮춘다고 해도 경기침체와는 거리가 멀다. 더구나 중앙은행이 선제 조치를 취하고 있다. 물론 금리와 통화정책으로 경기를 조절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비관론자들의 경기침체론은 로슬링 교수가 지적하는 부정본능과 공포본능의 합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우리 경제도 일부의 ‘폭망(?)’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 반대로 ‘견실한 성장’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진실은 중간 어디쯤이다. 다만 당국이 로슬링 교수의 이론처럼 경제를 ‘사실’ 대로 보고 이에 걸맞은 정책을 시행하면 ‘정부가 주장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 성장률도 가능하다.

요즘 투자가들은 고민이 많다.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그렇다고 우리보다 더 나아 보이는 나라도 별로 없다. 한 외국인이 지적했듯 ‘한국인만 모르는 한국’이 많은 것 같기도 하다.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5000만 인구 국가로서 유일하게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국민연금이 행동주의 펀드로 변신했다. 재벌과 대주주의 일방주의도 시장친화적으로 변하고 있다. 모처럼 소액주주가 대접받는 시대다.

요즘 각종 논쟁으로 혼란스럽다. 다들 자기 논리에 빠져 ‘factfulness’가 설 자리가 없다. 그러나 한국형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한 정반합(正反合) 과정일 것이라고 믿고 싶다. 사실 혼란스러울수록 기업의 실제 가치와 시장 가격의 편차는 커진다. 공포본능을 통제할 수 있는 현명한 투자가에게는 자주 오지 않는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