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슈퍼예산'의 비용·편익 꼼꼼히 따져야
팟캐스트에서 큰 인기를 얻어 공중파 방송까지 진출했던 예능 프로그램 중 ‘OOO의 영수증’이 있었다. 시청자가 보내온 한 달간의 영수증을 바탕으로 재무상담을 해주면서 소비생활 전반에 관한 국민적인 공감대와 긍정적인 반향을 불러왔다. 무조건적인 절약만 강조하지 않고 가족이나 미래를 위해 사용한 지출에 대해서는 ‘그뤠잇(great)’이란 칭찬을, 낭비에 대해선 ‘스튜핏(stupid)’이란 지적을 재치있게 했다. 소비생활에 대한 실질적 조언을 해주는지라 필자도 일상화된 지출을 돌아보게 해준 기억이 난다.

진행자의 개인적인 문제로 중도하차한 이 프로그램이 뜬금없이 생각난 것은 최근 재정지출과 관련한 일련의 정책 발표 때문이다. 올해 예산 470조원은 전년 대비 9.5% 증가한 슈퍼 예산이다. 본예산이 본격 집행되지도 않았는데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자는 것은 정부 스스로 본예산 편성이 잘못됐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미세먼지가 국가재난이 아니었단 말인가.

국제통화기금(IMF)이 단기·중기 경제성장의 역풍(headwind)을 논하며 추경 권고를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추경을 결정하는 것도 충동적으로 비친다. 국가재정법은 대규모 재해 등 예상치 못한 비상시에만 추경을 편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없어야 할 추경이 2015년부터 5년 연속으로 편성됐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3년 연속 이어지고 있다.

암묵적 재정지출인 국세감면도 국가재정법 제88조를 어기면서까지 늘리고 있다. 올해 감면한도율인 13.5%를 넘는 13.9%의 감면을 하기로 지난달 국무회의(2019년도 조세지출기본계획)에서 결정됐다.

50조원에 달하는 국세감면의 배경 중 하나는 최저임금 급등이다. 이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세금 환급 형태로 저소득층에 주는 근로장려금(EITC) 규모를 지난해 1조3000억원에서 올해 4조9000억원으로 네 배 늘렸다. 이렇게 되면 국내 총 1936만 가구 중 17%가 EITC 대상이 된다. 지방분권 강화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에 배분하는 부가가치세수 비율을 11%에서 올해 15%로 올린 것도 3조3000억원 정도의 추가 재정지출 효과를 가져왔다. 정부는 이 비율을 내년에는 21%까지 올릴 계획이다.

인구 고령화 등으로 재정지출은 확대일로인데 한도를 넘어서까지 국세감면을 늘리는 건 후대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경직적 지출인 의무지출이 느는 것도 재정운용 차원에서 후대에 부담을 주는 일이다. 의무지출 비중은 2017년 49.2%에서 작년 50.6%로 증가했고 올해 예산안에 따르면 51.4%에 달할 전망이다.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에 의하면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도달 시 국가채무비율은 한국이 39.5%로,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주요국의 47.0~78.3%보다 낮은 수준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14%) 도달 시 이 비율은 한국(39.5%)이 프랑스(32.6%), 독일(36.8%) 등에 비해 오히려 높다.

추경이든 국세감면이든 결국 국민 세금을 쓰는 일이다. 지난해와 달리 세수 불황이 예상되는 올해에 추경을 편성하려면 국채 발행이 불가피하다. 추경에 나서기보다 지난 2년의 ‘추경 영수증’부터 다시 살펴봐야 한다. 2017년 11조원, 지난해 4조원 등 총 15조원 규모의 ‘일자리 추경’을 했는데도 일자리 사정은 더 악화됐다.

나라 살림도 개인 살림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인 원칙은 다를 바 없다. 예능 프로그램이 국민 공감을 일으킨 것은 소비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소비, 분수에 맞는 소비, 꼭 필요한 소비를 하자는 대목이었다. 필요한 돈은 쓰는 것이 맞지만, 불필요한 지출은 어느 정도 줄여 저축하고 미래에 대비하는 것이 생활의 지혜다. 절약하고 새는 돈을 막다 보면 작은 돈이 모여 목돈을 만든다.

한국 경제는 주력산업의 경쟁력 후퇴와 글로벌 경기 둔화, 생산인구 감소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가라앉고 있다. 재정전문가가 아니라도 알 수 있듯이 내년 총선, 이어지는 대선과 얽혀서 정부 소비가 불필요한 소비를 부추기는 ‘스튜핏’ 지출이 돼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