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벌들은 관료와 정치인을 포획하고 언론마저 장악하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해외 경쟁당국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준비한 워크숍 강연자료의 한 대목이다. 그가 시민단체 활동 때 가졌던 개인적 ‘추측’을 객관적 ‘사실’인 양, 국가 이미지에 미칠 악영향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이렇게 내뱉어도 되는 건지 어이가 없다. 밖에 나가 한국은 법도 없는, 부패한 나라라고 제 얼굴에 침 뱉은 것이나 다름없다.

김 위원장은 취임한 뒤 “재벌을 혼내주고 오느라 (확대경제장관회의) 참석이 늦었다” “이해진 전 네이버 의장은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같은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등 설화가 끊이지 않았다. 혼쭐이 날 때마다 “말조심을 하겠다”고 했지만 그 약속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사실’만을 토대로 말해야 할 공정위원장이 편향된 인식을 대놓고 드러내는 건 심각한 문제다. 이번 발언만 해도 그렇다. 김 위원장은 “상위 30대 재벌 자산총액이 국내총생산(GDP)보다 커질 정도로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고 있다”고 했다. 자산총액이란 ‘스톡(stock)’을 GDP라는 ‘플로(flow)’에 대비시키며 집중 운운하는 것 자체가 사실 왜곡이다. 더구나 기업 간 경쟁은 국경을 넘어간 지 오래다. “10대 재벌의 직접 고용이 3.5%에 불과하다”며 협력사 고용, 간접 고용 등을 일체 무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김 위원장은 ‘때’와 ‘장소’, ‘상황’도 제대로 분간하지 못했다. 지금 기업들은 ‘비상경영’에 나설 정도로 앞이 캄캄하다며 위기감을 토로하고 있다. 정부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기업 때리기에 골몰할 때가 아니다. 게다가 기업이 해외에 나가 어렵게 쌓아올린 국가 이미지를 고위 공직자가 깎아내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도 공정위가 개발도상국에 경쟁법 집행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한 워크숍에서 그랬으니 더욱 말문이 막힌다. 많은 나라의 정부가 기업을 키우지 못해 안달이고, 이를 위해 외국 기업 공격도 불사하는 상황과는 너무나 딴판이다. 어느 나라 공정위원장도 밖에 나가 이런 식으로 자국 기업을 비난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