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한국 정부가 '세계 최첨단'을 달리는 분야
‘LED(발광다이오드) 없는 스마트폰과 TV’는 생각하기 힘들 만큼 LED는 영상화면의 대세(大勢)로 자리 잡았다. LED의 ‘초(超)고화질 혁명’을 완성한 사람은 일본인 나카무라 슈지다. 다들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젓던 청색 LED를 1993년 개발해냈다. 그 이전까지는 노란색과 빨간색의 LED만 있어서 여러 가지 색깔을 낼 수 없었다. 청색 덕분에 3원색이 완성됐고, 모든 색을 만들 수 있게 됐다. 나카무라는 이 공로로 201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엄청난 위업을 이뤘지만, 그의 ‘스펙’은 초라하다. 지방대학(도쿠시마대)을 졸업해 지방 중소기업(니치아화학공업)에 입사했다. 일본에는 글로벌 기업들이 즐비했지만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니치아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10년 동안 여러 제품을 개발했지만 ‘대기업 제품이 아니다’는 이유로 외면당했다. 나카무라는 저서 《끝까지 해내는 힘》에서 이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주저앉지 않았다. ‘불가능해 보여 사람들이 손대지 않는 것을 만들어내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500번이 넘는 실패 끝에 완성한 게 청색 LED다. 4년 동안 꼬박 새벽 일찍 출근해 밤늦게까지 연구·개발에 매달렸다. 주말에도 쉬지 않았다. 이 덕분에 세계사적인 개발에 성공했고, ‘흙수저 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슬프게도 한국에서는 나카무라가 일군 ‘대박’을 꿈도 꿀 수 없다. 획일적인 주52시간 근무제도 때문이다. 직원이 밤늦게까지 일하도록 내버려뒀다간 회사와 사장이 민·형사 처벌을 받는다. 나카무라처럼 일에 덤벼드는 친구는 회사 출입을 금지시키거나 연구실 전기 공급을 끊어야 할 판이다. 집에서 일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워라밸(일과 자기생활의 균형)’은 맞출 수 있겠지만 나카무라의 일본처럼 신산업 신바람을 일으키는 것은 단념해야 한다.

최근 경제 하강 조짐이 뚜렷해지자 정부에도 비상이 걸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부쩍 ‘경제 활력’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새해 벽두부터 경제부총리 주재로 ‘경제 활력 대책회의’를 열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이달부터 자동차 조선 디스플레이 석유화학 등 주력산업별로 ‘활력 대책’을 잇달아 발표할 것이라는 예고도 내놓았다.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시장경제 주체들의 발목을 잡는 족쇄를 풀지 않는 한 어떤 조치도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일선 기업과 임직원들의 개별 사정과 자율을 존중하지 않는 주52시간 근무제도의 강제 시행이 단적인 예다. 일감 사정에 따라 총량 범위 내에서 근무시간을 조절하는 ‘탄력근로’를 6개월까지 허용한다고 풀릴 문제가 아니다. 나카무라 같은 흙수저, 니치아 같은 중소기업이 세계의 중심으로 대도약할 ‘활력’의 원천을 봉쇄했다는 게 문제의 본질이다.

경제 활력을 근본부터 틀어막는 본질 규제가 무엇인지 진지한 성찰이 선행돼야 하는 이유다. 바이오 의료 정보통신 빅데이터 공유경제 등 신산업에 진출할 통로를 차단하거나 제한하는 규제도 문제지만, 기업할 의욕 자체를 꺾는 고용·입지·투자 관련 규제들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해 풀어내는 일이 더 시급하다. 무디스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잠재성장률에 훨씬 못 미치는 2.1%로 낮추면서 “한국 정부의 정책이 경제를 더욱 위축시키고 악재를 증폭시키고 있다”고 한 경고를 고까워만 해서는 곤란하다.

한국의 역대 정부마다 ‘규제 개혁’을 강조했지만 실제는 그 반대였다. 각종 이익집단과 원리주의 진영에 떠밀려 규제 장벽을 더 높이 쌓아올렸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규제들이 너무 많아 한국을 ‘규제의 갈라파고스’로 비유하고, ‘규제에 관한 한 세계 최첨단을 달리는 나라’라는 자조(自嘲)까지 나오는 지경이 됐다. 이것이야말로 문재인 정부가 끊어내야 할 적폐다. ‘혁신 성장’에 더해 ‘경제 활력’을 진정으로 이루겠다면 그래야 한다. 육상선수의 발목에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채워놓는다면 아무리 좋은 신발과 양말을 지원하고, 기능성 운동복을 입힌들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다. 규제는 시장경제에 채운 모래주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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