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반갑지 않은 마스크 전성시대
‘스페인 독감’으로 알려진 1918년 인플루엔자의 대유행은 이름과 달리 미국에서 시작됐다. 캔자스주의 군부대에서 발생한 인플루엔자는 몇 달도 안 돼 미국 전역으로 확산됐다. 독감에 걸린 병사들이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유럽 대륙에 파견되면서 인플루엔자는 유럽은 물론 아프리카로 번졌다. 바이러스는 배를 타고 아시아로 건너왔고, 한반도도 예외가 아니었다. 조선인 1700만 명 중 절반이 감염되고 13만여 명이 목숨을 잃은 ‘무오년 독감’이다.

변장이나 방한, 얼굴 보호용으로 쓰이던 마스크가 병균과 먼지 등을 막기 위한 보건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수천만 명이 희생된 이때부터라고 한다.

기능성 패션마스크 大유행

마스크가 대유행이다. 출근길, 길거리엔 온갖 색깔의 마스크가 넘쳐난다. 어린이를 위해 캐릭터를 넣은 마스크도 있다. 약국이나 마트는 물론 홈쇼핑 채널에서도 마스크를 판매한다. 겨울이나 3~4월 황사철에 집중됐던 마스크 판매의 특별한 시즌도 없어졌다. 연중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온라인 쇼핑몰에선 최근 5일 새 마스크 판매량이 3배나 늘었다고 한다. 가히 마스크 전성시대다.

인기 아이돌 가수나 배우들이 얼굴을 가리기 위해 착용한 데서 시작되긴 했지만, 마스크는 패션의 일부로 자리잡고 있다. 연예인들이 길거리를 다니거나 공항을 드나들 땐 이른바 ‘필수템’이다. 미세먼지가 극심한 날이 잦아지고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되면서 색깔과 디자인도 다양해졌다. 중국과 홍콩에서는 마스크 패션쇼가 열리고, 국내에서도 기능성 패션 마스크 수요가 늘고 있다고 한다.

숨막히는 봄이다. 하늘은 누리끼리하고, 바람도 거의 없다. 사람들은 침묵 모드다. 길거리에선 입을 열기도, 숨을 쉬기도 겁이 난다. 숨막히는 날들이 벌써 며칠째인가. 일기예보를 전하면서 추운 날이 아닌데도 “마스크 꼭 챙기세요”라고 하는 건 이제 일상이다.

참 반갑지 않은 마스크 전성시대다. 서울시와 환경부가 미세먼지 경보 발령, 비상저감조치 등을 알리면서 “마스크 착용 바랍니다”라고 할 때마다 ‘마스크는 누가 거저 주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하철 공짜로 태워주듯 마스크도 공짜로 나눠주면 안 되느냐는 사람들도 있다.

미세먼지보다 더 답답한 不通

더 숨이 막히는 건 정부 때문이다. 미세먼지 사태는 갈수록 악화되는데 국민이 체감하는 대책이라곤 문자메시지 보내는 게 거의 전부다. 지난 5일에야 총리가 “정부의 통렬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이 또한 유체이탈 화법에 가까웠다. 대통령은 지난 1월 미세먼지에 재난 수준으로 대처하라고 지시했지만 정부가 기껏 내놓은 건 인공강우 실험 정도의 ‘쇼’였다. 대통령이 6일 전 부처 역량 총동원을 지시한 뒤에야 각 부처가 허둥지둥 움직이는 모습이다.

물론 미세먼지의 원인이 한둘은 아니다. 서풍을 타고 오는 중국 요인, 국내 요인, 대기 정체 같은 기후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해법이 간단치 않다. 하지만 서둘렀어야 했다. 이제 와서 중국과의 협의를 서두르면 실제 효과를 이 봄 안에 볼 수 있을까. 석탄 발전소 가동을 중지해도 탈원전을 고수하면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국민들 고통의 소리에 귀를 열어야 한다. 내 편, 네 편 가르지 말고 건전한 비판과 제안에 마음을 열어야 이 불통과 미세먼지의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사막의 침묵에도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문재인 정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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