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부활한 강대국 간 경쟁, 미국의 리더십은?
미국 워싱턴DC의 싱크탱크들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지 만 2년이 된 걸 계기로 현재의 미국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세계정세가 어떻게 될지 전망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애틀랜틱카운슬은 앞으로의 세계정세를 결정하고 글로벌 체제의 미래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을 △강대국 경쟁의 부활 △불확실한 미국 리더십 △민주주의적 시장경제의 미래 △4차 산업혁명 하의 급격한 기술 변화로 보고, 이런 요인이 미국의 정책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

미국 행정부가 지난해 출간한 ‘국가 안보 전략’과 ‘국가 방위 전략’에는 강대국 경쟁의 부활, 특히 중국·러시아와의 경쟁이 미국의 안보와 경제적 번영에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나와 있다. 냉전 종식 후 70년간 미국 주도 아래 정립된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러시아와 중국은 더 이상 따르려 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시리아에서 군사적으로 개입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상대로 군사적 위협을 하면서 미국이 만든 글로벌 시스템을 흔들려고 한다. 중국의 위협은 이보다 훨씬 더 크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종신지배 체제’ 하에 이르면 10년 안에 미국의 경제 규모를 넘어설 수 있으며, 그런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사력을 키우는 중국은 ‘권위주의적 국가자본주의’라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며 미국이 세워놓은 국제질서를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미국의 동맹국들이 “미국이 주도적으로 다시 국제질서를 재정립할 수 있느냐”고 의문을 던지고 있다면, 다음으로 생각해봐야 할 질문은 “미국이 국제질서를 재정립할 의지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다. 많은 미국인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을 통해 해외 군사 개입에 물음표를 던지게 됐고, 2008~2009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세계화의 혜택에 대해 반신반의하게 됐다. 연방정부 셧다운 등 행정부가 가지는 역기능을 보고, 사회계층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는 것을 겪으면서 민주주의가 가장 바람직한 통치 체제인가에 대한 질문도 던지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건 이런 문제에 대한 체감온도가 엘리트층보다 일반 시민층에서 훨씬 뜨겁다는 것이다.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인 퓨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문가 중 86%가 세계화를 긍정적으로 보는 데 비해 일반 시민 중에선 44%만 그렇다고 답했다. 미국과 국제사회가 만든 룰을 따르지 않고 있는 중국이 국가주도적 자본주의 방식으로 경제를 성장시키고 효과적으로 국가를 통치하는 걸 보고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에 대해 의심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미국 정치인들은 이런 대중의 심리를 선거에 이용하고 지금의 ‘미국 우선주의’란 정치 슬로건을 만들어 냈으며, 여론은 미국의 리더십과 역할에 대해 더욱 양극화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워싱턴 정책 커뮤니티와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미국의 고립주의와 불확실한 리더십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경고하고 있지만 여론은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게 현실이다.

4차 산업혁명의 기술진보는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에 기반한 기존의 국제질서가 드러내는 한계를 보다 가시화하고 있다. 미국은 1·2·3차 산업혁명에서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진보한 기술을 만들어낸 국가였지만 이제는 그 자리를 중국에 내줘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특히 인공지능, 5세대(5G) 이동통신, 양자컴퓨터같이 국가 안보에 직결되는 기술 분야에서 미국은 위협을 느끼고 있다. 이런 분야의 기술들이 전 세계 노동시장에 가져올 변화가 경제적 불확실성을 증대시키고 나아가 민주주의 거버넌스(지배구조)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국의 리더십이 처한 미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자성의 목소리가 워싱턴 정책 커뮤니티에서 커지고 있다. 그런데 뮬러 특검, 북한 비핵화 등 미국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쌓여 있다.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 방향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했을 때 앞으로 미국이 어떻게 난제를 풀고 리더십을 어떻게 정의하고 행사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