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어머니의 실언
설날은 부모님을 생각나게 한다. 아버지는 십수 년 전 4월 초 돌아가셨다.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가 있는 곳으로 장지를 정했다. 그 산은 내가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무던히도 오르던 곳이었다. 장례를 치르고 조문해준 분들에게 다음과 같이 ‘감사의 글’을 보냈다.

‘고인은 가시는 길에 좋은 계절을 택하셨습니다. 청명 한식날 복사꽃과 진달래가 만발한, 조부님과 조모님 산소에 성묘하러 어릴 때는 아버지 손을 붙잡고, 커서는 멀찌감치 뒤따라서, 그리고 얼마 전까지는 부축해 같이 오르던 길이었습니다. 같은 계절, 같은 길을 따라 아버지를 산소에 모시고, 제 아들의 손을 잡고 내려오면서 싸리한 추억에, 저도 모르게 꽉 쥔 손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아들의 모습에, 철없는 제 모습이 비쳐지고…. 이제야 이 산을 오르내릴 때 왜 그리 제 손을 꽉 잡으셨는지, 살아 계실 제 그 반의 마음을 헤아렸더라면…. 가랑비 내리는 산길에 퍼질러 앉아 목놓아 곡을 해도, 아는 이는 저밖에 없었습니다.’

오랜 아버지 병수발로 편한 것을 모르고 사신 어머니에게 못다 한 정성을 쏟겠다고 약속하며 글을 맺었다. 그 후 어머니를 자주 찾기 위해 고향인 경북 상주로 공장을 옮겼다. 그 덕분에 어머니가 해주는 입에 맞는 음식을 먹고 곁에서 한숨 자고 나면 웬만한 걱정은 이겨낼 수 있는 위안을 받았다. 어머니는 꽃을 유난히 좋아하셔서, 계절마다 고향 산천에 핀 꽃구경을 하러 손을 잡고 소풍을 다니곤 했다.

그러던 분이 지난해 봄부터 병원에 누워 계신다. 1주일에 두세 차례 방문해 둘만 아는 추억을 한참 이야기한다. 얼마 전에는 병실에 늘 켜져 있는 TV에서 스쳐 지나가는 내 모습을 봤다고 하셨다. 지난달 15일 청와대의 ‘기업인과의 대화’에 지역상의회장 자격으로 참석했는데, 운좋게 큰 그룹 회장 옆에서 차를 마시는 내 모습이 잠시 카메라에 잡혔나 보다. 그 찰나의 영상에도 용케 자식을 알아본 어머니가 “저기 내 아들이 나왔네요”라고 하자, 곁에 있던 간호사는 무심히 “저기는 보통사람이 가는 자리가 아니에요, 할머니”라고 일러줬단다. 약간 언짢아진 어머니는 “내 아들 보통사람 아니에요”라고 다잡아 말하셨다.

이튿날 내가 가니 어머니는 큰 실언을 했다고 걱정하셨다. 행여 아들에게 해가 될까 평생 한번도 남에게 자식 자랑한 적이 없는데, 혹여 탈이 되면 어쩌나 하고 밤새 근심이 크셨단다. 나는 어머니 손을 꼭 잡고 달래드렸다. “괜찮습니다 어머니, 이제 자랑 많이 하셔도 됩니다.” 봄날 살얼음 위를 걷는 조심성으로 자식을 키운 어머니가 이제는 맘 편히 이런 실언을 많이 하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