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두루뭉술한 정부의 규제정비 확정안
정부는 최근 2019년 규제정비 종합계획을 확정해 발표했다. 올해 100건 이상 규제혁신 사례를 만들고 이를 위해 부처별 핵심분야 116개를 선정, 추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추진 목표와 방향, 규제정비 핵심분야를 살펴보면 ‘이것이 정말 확정안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특히 핀테크(금융기술)의 선두 주자이자 2016년 세계 처음으로 유전적 장애 치료를 위한 미토콘드리아 대체 요법을 승인한 영국의 규제혁신 방안과 비교해 보면 확정안에 담겨야 할 구체성이 결여돼 있다.

영국은 올바른 규제환경을 조성해 혁신가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쉽게 시장으로 가져옴으로써 산업을 활성화하고 외부 투자를 끌어들여 자국을 미래 산업의 최전방에 올려놓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반면 한국은 규제혁신 성과를 창출해 국민과 기업의 체감도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혁신 사례 100건 이상이라 했으니 어떻게든 이 숫자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 뻔하다. 혁신의 궁극적 목표는 경제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이지 사례 건수가 아니다.

영국은 규제혁신을 위해 상무장관을 위원장으로 대부분 각료와 정부의 수석과학고문, 규제정책위원회 위원장 등이 참여하는 실무진 모임을 만들었다. 이 모임은 규제 문제에 대해 새로 입수한 정보를 분석하고, 부처가 협력해 규제정비에 도움을 줄 목적으로 구성됐다. 반면 한국은 국무조정실 중심의 ‘규제샌드박스 관계기관 협의회’를 구성해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겠다고 밝혔다. 영국은 정부 모든 부처가 힘을 모아 함께 가는 모습이지만 우리 정부는 부처 간 힘겨루기와 조율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란 느낌을 받는다.

규제정비 핵심분야를 보면 영국 정부는 컴퓨터 가상변호사부터 하늘을 나는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미래의 기술 발전과 보조를 맞출 수 있는 15개 프로젝트에 먼저 1000만파운드(약 146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한국은 부처별로 신산업과 기존산업, 민생불편의 세 범주에서 핵심 분야를 정했다. 하지만 국민불편 해소,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 전환, 편의 확대, 신산업 육성 등의 내용에는 구체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영국은 규제정비에 관한 정부 역할을 특히 강조한다. 민간이 규제에 대해 문의하기 전에 정부가 새로운 기술에 대해 다각적인 측면에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의학 분야에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사용할 것인지, 사용한다면 어느 선까지 허용할 것인지, 혹은 인공생명체를 만드는 합성생물학이나 유전자편집과 같은 신기술에 관해 윤리적·사회적 문제가 될 만한 규제를 정부가 미리 다양하게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할 수 있는 과제를 발굴해 올 1분기 내 발표하겠다고 했다.

영국은 규제혁신의 잠재적 수요와 미래 적용을 고려하면서 표준연구소나 물리연구소 같은 국립연구소와 전략적으로 논의하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한국은 그 많은 국립연구소 또는 정부 출연 연구원이 들어갈 자리를 만들지 않았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정부가 규제혁신 발표부터 현장 적용까지의 시차 단축을 위해 시행령이나 고시 등을 통해 우선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밝힌 점이다. 정부는 소극적인 행정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지침, 실무 규범 및 공식 규정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동시에 규정 관련 문의의 대국민 창구를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이 더 옳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