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사이에 1000리를 뛰는 말이 있다. 이른바 천리마(千里馬)다. 건강하고 힘도 좋은 이 천리마가 소금 수레를 끌고 있다면 그야말로 자원의 낭비다. 그런 천리마의 처지와 상황을 우리는 ‘불우(不遇)’라고 적을 수 있다.

명마(名馬)의 역대 최고 감별사라고 알려진 백락(伯樂)이 험준한 산에서 소금 수레를 끌고 있는 천리마를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백락이 천하의 명마가 때를 만나지(遇) 못한(不) 상황을 슬퍼했다는 내용이다.

이 스토리는 ‘驥服鹽車(기복염거)’라는 성어로 자리를 잡았다. 천리마(驥)가 소금 수레(鹽車)를 끈다(服)는 엮음이다. 더 직접적으로 적으면 懷才不遇(회재불우)다. 재주(才)를 품고서도(懷) 누군가를 만나지 못했다(不遇)는 뜻이다.

더 높은 자리에서 더 큰 일을 할 사람이 세상을 만나지 못해 초라하게 살아가는 경우를 많이 본다. 태어난 가정에서 좋은 부모와 형제를 만나지 못해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불우’ 청소년일 테고, 경제적 형편이 좋지 못해 고생하는 사람이 ‘불우’ 이웃이다.

세상에서 ‘만남’은 그토록 중요하다. 우연히 누군가를 마주치면 조우(遭遇), 그저 우연성만이 눈에 띄는 만남은 기우(奇遇), 마주친 상황이 경우(境遇), 어여쁜 이를 만나면 염우(艶遇)다.

遇(우)에는 ‘남을 상대하는 태도’의 뜻도 있다. 예로써 대접하면 예우(禮遇), 박절하게 대하면 냉우(冷遇), 가혹하게 대하면 혹우(酷遇), 그 정도가 더 심하면 학우(虐遇)다.

그러나 때와 여건을 만나지 못하는 ‘불우’의 상황에는 자신의 몫도 있다고 보인다. 만났어도 그냥 지나쳐 버리거나 주의가 부족해 그 중요성을 간과하기도 한다. 아니면 욕심을 과도하게 부려 더 좋은 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큰 뜻이나 좋은 재주를 품은 사람이 버려지면 곤란한 사회다. 어느덧 대기업 규제가 우리 사회의 뜨거운 쟁점으로 다시 떠올랐다. 열심히 뛰어 경제에 커다란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대기업은 대한민국 명마이자 천리마일 수 있다. 소금 수레의 큰 멍에를 그에 지우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살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