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인다"
대학교수직에서 물러난 지 2년이 다 돼 간다. 정년을 5년 남겨두고 퇴직할 때 가장 많이 들은 소리가 “그 좋은 자리를 왜?”였다.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올 때는 갈등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이유를 정리할 수 있게 됐다.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인다’고 했다. 대학 밖에서 보니 그 조직에 묻혀 있을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문제들이 명확해진 것이다. 교수직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미술대 학장을 맡으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교수 생활의 꽃이랄 수 있는 학장 자리에서 대학 생활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됐다는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인데, 행정을 맡으면서 작가로서의 길과 교수로서의 길이 양립하기 어렵다는 걸 절감해 둘 다 제대로 하지 못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학장을 맡은 뒤 내심 작가로서의 길을 포기하고 교수 생활에 집중해야겠다고 결심하면서 생활이 많이 정지됐다. 화가로서의 치열함보다는 조직 생활에 순치돼야 하는 자리에 있다 보니 대부분 구실을 만들어 술추렴하는 나날들이었고, 그런 생활이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필자를 깨운 것은 “은퇴하고 나면 뭐하고 살지?”라는 친구의 한마디였다. 은퇴까지 15년이란 세월이 남아 있던 당시, 그 말이 심각하게 다가온 것은 화가로서의 길을 거의 포기하고 있던 터에 은퇴하고 나면 그림밖에 더 있겠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손은 굳어 말을 듣지 않고, 생각은 작가가 가져야 할 치열함보다는 교수나 행정가에게 필요한 보편적인 가치관으로 무장돼 있었다. 감각이 많이 무뎌진 탓에 그림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다시 그림을 제대로 그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미술시장에서 나름 성공하고 모교 교수로 초빙된 터라 후배들에게는 선생인 동시에 좋은 화가로서의 모습을 보일 수 있겠다는 자부심과 자신감은 보직을 맡으면서부터 엷어져 갔고, 화가로서의 삶을 포기한다면 좋은 선생으로 남을 수 있어야 하는데 대학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서양화 전공 교육의 핵심은 좋은 화가를 길러내는 데 있을 것이다. 좋은 화가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영재를 받아들여 엄격히 훈련해야 한다. 우리의 현실은 입학 과정부터 왜곡돼 있다. 부정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가르칠 학생의 선발을 다른 대학의 교수들에게 의존하는 채점 지원이란 제도와 어떤 기준으로 선발하는지 모호하게 하는 실기 전형 방식이 교수들로 하여금 가르치는 이로서의 책임의식을 방기하게 만든다.

실기를 위주로 해야 좋은 화가를 길러낼 수 있는데 종합대학이라는 틀이 그걸 불가능하게 막고 있다. 실기시간 비중이 턱없이 낮다. 서양화과 학생들은 대부분 어릴 적부터 잘 그린다는 칭찬을 들으며 자랐고, 더 잘 그리기 위해 대학에 들어오는데 교육과정과 내용이 그 꿈을 무참히 꺾어버리는 것이다. 4년제 종합대학 안에 미술대학이라는 단과대학으로 존재하는 교육시스템은 비정상적이다. 대부분 선진국은 미술학교 혹은 아카데미 형태로 독자적인 시스템을 갖고 있다.

어떻든 교수직을 유지하는 게 비겁하다고 느껴 화실로 돌아왔다. 화가의 길을 새로 준비하는 시간은 길고도 힘들었다. 그러나 어쩌면 화가로 입문하고 나서 보낸 만큼의 시간을 더 버텨야 할지도 모르는 길이니 꾸준히 내공을 쌓으며 걸어가야 할 것이다. 좋은 그림을 그려낸다면 현직에 있지 않더라도 자랑스러운 선생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