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논점과 관점] 軍이 軍다워야 평화도 가능하다
“전쟁과 평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프로이센의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를 비롯한 많은 군사전략가가 기회 있을 때마다 해온 말이다. 평화만 따로 떨어져 존재할 수 없으며, 평화는 전쟁을 극복해야만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라는 유명한 말도 남겼다. 전쟁은 곧 국가들 간 정치적 행위라는 뜻이다. 다만 군사력을 비롯한 ‘다른 수단’을 동원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국가가 존재하는 한 전쟁의 위협은 피할 수 없고,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국방부가 지난 20일 ‘2019년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한반도 평화를 뒷받침하는 강한 군대 건설’을 목표로 내세웠다. 이런 목표에 대해 시비를 걸 하등의 이유가 없다. 평화도 힘이 있어야 지킬 수 있다는 것은 평범한 진리다.

北 변화 없는데 우리 안보만 약화

그러나 세부 내용을 보면 ‘강한 군대’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한·미 연합 야외기동 훈련 규모를 축소하는 방안을 미군과 협의 중이라고 한 것부터 그렇다. 매년 3~4월 대규모로 시행해온 연합훈련 규모를 줄여 대대급 수준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북한 김정일과 김정은에게 큰 공포감을 심어줬던 ‘키리졸브 연습’ ‘독수리 훈련’ 이름도 바뀐다.

이미 올해 세 차례에 걸친 남북한 정상회담과 6월 미·북 정상회담으로 한·미 연합훈련이 줄줄이 중단 또는 축소된 마당이다. 이러다간 주한미군 역할이 단순한 ‘평화유지군’으로 쪼그라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9·19 남북한 군사합의서는 우리 군 자체의 안보 약화 우려를 자아낼 내용들이 적지 않다. 군사합의서 제1조의 ‘상대방을 향한 대규모 군사훈련 중지’ ‘무력 증강 금지’ ‘상대방 정찰행위 중지’ 등이 대표적이다. 최전방 우리 군은 포사격 훈련조차 제대로 할 수 없고, 대북 정찰활동에 큰 제약을 받게 됐다. 국방부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북한 핵·미사일 위협 대비’ ‘킬 체인 등 3축 체계 구축’ 등의 표현이 사라진 것은 군사합의를 의식한 때문이다. 군은 국방백서와 정신전력 교재에서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는 문구를 삭제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軍, 올리브 가지 아닌 총 잡아야

북한은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데, 우리 안보만 무너질 판이라는 얘기가 나올 지경이 됐다. 오히려 북한은 ‘비핵화’를 약속해놓고 핵탄두 소형화 기술 개발을 지속하고 있으며, 핵물질을 추가 생산하고 있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수시로 군사합의를 들이밀며 우리 군 훈련뿐만 아니라 지휘관 회의까지 트집잡고 있다. 신형 방사포 시험을 자행하고, 자신들이 벌이는 대규모 겨울철 군사 훈련에 대해선 아무런 말이 없다. 불균형도 이런 불균형이 없다.

국가 간 교섭과 합의는 언제든 깨질 수 있다. 역사상 평화 협정과 불가침 조약들이 휴지 조각 된 사례는 일일이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정치와 외교가 평화의 올리브 가지를 흔들더라도 군은 항상 총을 단단히 잡고 있어야 하는 이유다.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풀을 뜯는 양 떼를 든든하게 지키는 매서운 개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하는 게 군이다.

적에게 전율의 대상이 될 정도의 강한 군사력이 있어야 국가 간 정치적, 외교적 협상력에서도 우위를 점해 전쟁의 참화를 막을 수 있다. “군사력의 가치는 실제로 군사적 행동을 하는 데서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이를 회피하고자 하는 데서 발휘된다”는 것은 군사학의 기초적인 내용이다. 군이 군다울 때 평화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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