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규제가 기업가정신 옭아매서는 안돼
서울 강남 개발이 한창일 때 ‘졸부’라는 말이 유행했다. 어느 날 갑자기 농사짓던 땅값이 서너 배 올랐으니 그야말로 졸지에 돈벼락을 맞은 졸부가 많이 나왔다. 그때 생겨난 게 대형 사우나다. 별 위험이 없는 현금 장사인 사우나 사업이 안성맞춤이었다.

비슷한 시절, 비행기와 승용차 속에서 부족한 잠을 달래며 세계를 누비던 기업인도 있었다. 재산으로 치자면 졸부보다 수십 배는 많았을 이들 기업인도 현금을 굴리며 편안히 살 수 있었을 텐데 새우잠을 자가며 기업 활동에 전념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을 움직인 힘은 바로 ‘기업가정신’이었다.

기업가정신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통찰력과 새로운 것에 과감히 도전하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정신을 일컫는다. 보통은 1970년대를 우리 경제가 가장 활기차게 돌아가던 시기로 꼽는다. 1970년대는 지금과 무엇이 달랐을까. 당시는 자본도 기술도 모두 턱없이 부족했지만, 기업가정신이 가장 충만했던 시기라는 점이 다르다. 오늘날 한국 경제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1% 가능성을 보고 도전을 마다하지 않던 기업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하면 과언일까. 이들 기업인마저 졸부들과 같았다면 ‘한강의 기적’은 가능했을까.

우리 경제가 조로(早老) 현상을 보인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무엇보다도 기업가정신이 실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병철, 정주영 등과 같은 거인들을 잇는 후배 기업인이 최근에는 보이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한강의 기적을 이끈 1세대 기업인들을 싸잡아 실패한 기업인으로 규정하면서, 역동적인 기업가정신의 실종을 부채질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씻을 수 없다.

우리 경제의 재도약은 기업가정신을 되살리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첫째, 무엇보다도 기업인들의 기(氣)를 살려줘야 한다. 기업인, 총수들을 겨누고 있는 검찰, 국세청의 창끝에서 기업가는 잔뜩 웅크리기 마련이다. 웅크린 자세에서는 홈런을 기대할 수 없다. 기업가정신은 ‘인정 욕구’가 바탕을 이룬다. 기업인들을 인정해 주기는커녕 부정축재자, 가진 자, 기득권층으로 적대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기업가정신이 싹틀 수 없다.

둘째, 과도한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 승자에게 더 많은 보상이 돌아가게 하고, 더 큰 승리를 쟁취하게 만들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같이 더 큰 판을 벌이지 못하게 하는 온갖 규제가 기업가의 도전에 한계를 지운다.

셋째, 기업 환경의 불확실성을 줄여줘야 한다. 예측 불가능한 위험이 과도하게 증가하면 위험을 감수하려는 적극적 태도가 아니라 위험을 관리하려는 소극적 태도를 취하게 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불확실성을 제거해 주기보다는 이를 증폭시키는 방향의 정책을 너무 많이 그리고 자주 펼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기업들이 막대한 규모의 현금성 자산을 쌓아놓고 있지 않느냐고 닦달하기 전에 왜 기업이 그렇게 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넷째, 노사관계를 안정시켜야 한다. 노사관계에 법과 원칙보다 감상적 온정주의를 앞세우다 보니 분쟁이 습관화되는 경향이 보이기까지 한다. 기업이 모든 역량을 집중해도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 어려운데, 노사관계가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더욱더 기업가정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우리 기업이 기업가정신이 충만한 기업가보다 관리형 ‘기업 관료’로 채워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기업가정신이 충만한 기업인들이 휘젓고 다닐 수 있는 분위기를 갖춰야 한다. 기업가정신이 실종된 경제는 정신 나간 육체와 같다. 우리 사회가 기업가정신을 이기주의적 부자의식으로 폄하하는 한 우리 경제의 앞날은 어둡기만 할 뿐이다. 그런 환경에서는 별별 경기부양책을 강구해도 백약이 무효다. 기업인에 대한 올바른 평가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기업이 나라다”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러시아 발언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