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고 있다.”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국장이 한 달 전 언급한 이 말은 아·태지역 경제 전반에 대한 진단이었지만, 한국 기업인들에게 더욱 뼈저리게 와 닿았다. 점점 강화되는 기업 활동 규제, 돌파구 없는 현실, 미래 비전 상실에 짓눌려 있어서다.

암울한 경제지표와 불확실성은 경제주체들을 잔뜩 움츠러들게 만든다. 다른 나라들이 좋을 때 홀로 나빠지더니, 해외 경제가 나빠지기 시작하자 더 빨리 악화되고 있는 게 요즘 우리 경제 모습이다. 지난 10월 생산·소비·투자가 9개월 만에 소폭 반등했지만, 현재의 경기상황을 반영한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7개월째 하락해 9년 만에 최저치다. 간판 대기업(매출 20대 상장사)들조차 재고·환차손·인건비 증가라는 ‘3중 한파’로 몸살을 앓고 있다. 유일한 버팀목인 반도체조차 내년은 잿빛 전망 일색이다. 자동차는 미국 관세 폭탄이 현실화하면 초토화될 판이다.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사례에서 보듯 해외 일감마저 위태롭다.

그럼에도 하소연조차 못하는 대기업을 대신해 외국 기업, 벤처기업 등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변화다. 며칠 전 주한 유럽상공회의소가 ‘갈라파고스 규제’를 꼬집은 데 이어 어제는 주한 외국상공회의소들이 “규제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 달라”고 촉구했다. 외국상의 대표, 외국기업 CEO 등 150여 명이 모여 공동성명을 낸 건 전례 없는 일이다. 특히 “현실은 어렵고 미래는 보이지 않고 정부는 뭐 하는지 모르겠다”는 벤처기업인들의 토로는 기업이 처한 상황을 함축한다. “제발 기업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해달라”던 한 중견기업인의 호소만큼 처연함이 녹아 있다.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미국은 GM의 선제 구조조정으로 일자리가 줄게 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즉각 ‘수입차에 대한 25% 관세 부과’를 언급하며 업계 안심시키기에 나섰다. 이런 ‘미국 우선주의’는 다른 말로 ‘미국 기업 우선주의’다. 그 결과 한국의 13배, 일본의 4배에 달하는 거대 경제가 올해 13년 만의 3%대 성장을 예약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기업 활동을 잠재적 범죄로 간주하는 경향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 세계 최상급 규제를 망라한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기업 기 살리기 요구가 개탄스럽다”는 청와대 경제보좌관의 인식이 그렇다.

내년에는 더 혹독한 추위가 몰려올 것을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올해 2.8% 안팎으로 예상되는 경제성장률이 내년에는 2.5~2.6%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다. 경제주체들이 느끼는 ‘심리적 겨울’이 더 심각한 문제다.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일자리 확대 등의 성과를 내라고 독려하고 있다는데, 먼저 기업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