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들이 정부에 신청한 사회간접자본(SOC)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면제’ 사업 규모가 30여 건, 약 60조원에 이른다는 한경 보도다. KTX 세종역 신설(사업비 1320억원), 경북 포항~강원 동해 복선전철화(4조원) 등 대부분 지역 민원성 사업이다.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에 이르는 대형 사업이지만, 제대로 된 편익분석을 거치지 않고 추진될 경우 혈세 먹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예타 대상은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면서 국가 재정 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사업이다. 예타는 1999년 제도 도입 이후 작년까지 총 782건의 지자체 사업 중 273건을 ‘사업부적합’으로 판정할 정도로, 국고 낭비를 예방하는 순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공약사업 등에는 견제력을 잃은 지 오래다. 사업성이 부족해도 ‘국가재정법’ 등이 규정한 긴급 사업, 국토균형개발, 국가 정책사업, 남북한 교류 사업 등에 편입되면 예타를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부내륙철도사업 등 17개 광역지자체가 예타 면제를 신청한 사업의 상당수도 예타에서 한두 차례 떨어진 것이다.

법률에 예타 면제 조항을 둔 것은 정책상 필요한 사업을 빠르게 추진하라는 차원일 것이다. 하지만 면제를 남발한다면 예타 제도가 유명무실화돼 무분별한 선심성 사업이 늘 수밖에 없다.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강원 양양공항, 충북 충주공항 등 지방공항 건설사업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문재인 정부 들어 예타 면제 증가는 우려할 수준이다. 예타 면제 사업은 2015년 13건에서 올해 26건으로 늘었다. 사업비로 따지면 KTX호남선 무안공항 경유 사업 등 11조9000억원으로 2015년(1조4000억원)의 8.5배다. 3년 만에 예타 면제가 이렇게 급증한 것을 정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예타 면제가 필요한 사업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최소화하는 게 법 취지에도 맞고, 예산 낭비도 없애는 길이다. 그동안 예타 면제를 줄이고 예산사업의 국회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정부·여당이 ‘공약사업’과 ‘지역 민원’을 이유로 예타 면제를 크게 늘리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