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갈등 해결, 조정을 활성화해야
우리는 층간 소음, 주차 시비 등으로 인한 다툼부터 노사 대립과 환경 관련 분쟁 등 사회 각층에서 다양한 갈등과 분쟁을 겪고 있다. 갈등 해결 과정에서 분노 조절을 못한 개인들의 극단적인 행동에 관한 소식도 종종 접하고 있다. 이런 갈등을 최소한의 사회·경제적 비용으로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우리는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전통적 분쟁 해결 방법인 소송(訴訟)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법대로 하자”는 식의 갈등 해결 방식에 대한 인식 탓에 법원의 사건 처리 부담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우리나라 인구 대비 소송 건수를 비교한 2015년도 조사에 따르면, 제1심 법원에 제기된 등기 등록사건을 제외한 순수 민사사건은 인구 1만 명당 약 1030건에 이른다. 독일(485.8건), 프랑스(333.3건), 스위스(520건) 등과 비교하면 두 배 정도 많다. 소송으로 인한 시간과 비용, 감정 소모 등을 감안하면 우리 사회의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당사자 간 우호적인 분쟁 해결을 도모하는 조정제도의 활용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공장에서의 직업병 발병에 대한 보상 문제 해결을 위해 ‘직업병조정위원회’를 설치해 조정을 시도하고 있는데, 우리 사회의 분쟁 해결 시스템 개선 차원에서 참고할 만하다.

조정은 제3자인 조정인이 분쟁 당사자 사이에 개입해 합의안을 도출해 내는 비(非)구속적인 분쟁 해결 절차다. 당사자 간 양보와 타협을 통해 우호적인 분쟁 해결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당사자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지 않아 계속적이고 지속적인 거래관계 유지가 가능하다. 절차도 유연하고 탄력적이어서 소송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며, 짧은 기간에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조정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소송 사건을 담당 재판부가 판결하기 전에 외부 분쟁조정기관에 의한 조정에 회부해 합의를 유도하는 법원연계형 조정제도다. 여기에서 합의가 성립되지 않으면 다시 소송으로 복귀한다. 현재 대한상사중재원, 지방변호사협회 등 다수의 연계조정기관에서 시행하고 있다. 둘째, 환경부 환경분쟁조정위원회,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 보건복지부 의료분쟁조정중재원 등 관련법에 근거해 설치된 행정형 조정이 있다. 마지막으로 순수 민간단체나 기구에 의한 민간형 조정이 있다. 미국, 영국, 싱가포르 등에서 많이 행해지는 조정제도다. 우리나라에서는 상거래 분쟁 해결 기관인 대한상사중재원에서 시행하고 있다.

해외에선 조정이 주요한 분쟁 해결 절차로 정착해 있다. 미국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보험사와 주민들 간 다수의 피해 보상 문제와 관련해 미국중재협회(AAA)에 조정중재위원회를 설치해 성공적으로 해결했다. 홍콩은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건 후 다수의 투자자들에 대한 보상을 위해 홍콩국제중재센터(HKIAC) 내 특별조정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조정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조정이 소송을 보조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조정을 통한 분쟁 해결은 첨예한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감정 소모를 피하고 이로 인한 기회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적극 권장할 필요가 있다. ‘가장 나쁜 화해도 가장 좋은 판결보다 낫다’는 법 격언이 있듯이 분쟁 특성에 가장 적합한 해결 방안을 찾아내 갈등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으며, 당사자들의 계속적인 사회관계 유지에 최적화된 분쟁 해결 제도가 조정이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할 것이다.

또 기업이나 국민들이 조정제도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이용자 친화적인 플랫폼을 입법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조정기관과 제도 앞에서 이용자들이 자신의 분쟁을 어디로 가져가야 할지 혼란스러워 하고, 조정기관마다 그 효력이나 절차에 큰 차이를 보인다면 조정제도 이용이 저조해지고 결국 조정의 활성화는 요원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 우리 사회에 적대적인 대결구조에 의한 극단적 분쟁 해결보다는 우호적이고 상생하는 부드러운 분쟁 해결이 보편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htshi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