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찬 날개박스 부장(왼쪽부터), 황규찬 사장, 이철 에이스기계 대표가 경기 시화MTV 공장에서 테이프가 필요 없는 택배상자의 제작 공정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김낙훈  기자
황금찬 날개박스 부장(왼쪽부터), 황규찬 사장, 이철 에이스기계 대표가 경기 시화MTV 공장에서 테이프가 필요 없는 택배상자의 제작 공정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김낙훈 기자
1t 트럭으로 10년째 택배기사 일을 하던 황금찬 씨(46)는 택배상자가 불편하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택배상자를 테이프로 붙이다 보니 포장하고 뜯어내는 데 시간이 적잖게 걸렸다. 테이프 비용도 들었다. 소비자 입장에선 분리배출이 귀찮은 문제다. ‘테이프가 필요 없는 택배상자를 개발할 수 없을까.’

형제가 개발한 ‘테이프 필요 없는 상자’

서울 양평동 금형공장 직원인 동생 황규찬 씨(42)와 머리를 맞댔다. 20년가량 금형을 제작해온 동생과 3년 동안 연구한 끝에 올해 초 ‘테이프가 필요 없는 택배상자(날개박스)’를 개발했다. 사전에 정교하게 디자인된 이 제품은 접는 선 부분이 프레스로 눌려져 있고 외곽은 잘려져 있다. 골판지 외부엔 친환경 핫멜트라는 점착제가 칠해져 있어 별도의 테이프가 필요 없다. 종이접기 방식으로 손으로 간단하게 조립하면 된다. 전체가 재활용품이어서 분리배출할 필요도 없다. 상자를 손으로 개봉할 수 있다. 커터칼 등으로 택배상자를 개봉할 때 의류 등 내용물이 찢어지는 상황을 예방할 수 있다. 택배상자에서 테이프를 떼낼 때 발생하는 소음도 사라졌다. 관련 특허를 등록했다.

"테이프 필요없는 박스…10년 택배 경험 담았죠"
형제는 올해 초 제품 이름과 같은 날개박스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골판지 상자 끝에 날개가 달려 있어 붙은 이름이다. 이를 핫멜트가 칠해진 부분에 접으면 박스가 완성된다. 동생인 황규찬 씨가 대표, 형인 황금찬 씨가 부장을 맡았다. 문제는 제대로 된 기계를 제작하는 일이었다. 기계를 제작하려면 공장과 설비가 필요했지만 이를 마련할 자금이 없었다.

지난 4월 경기 시화멀티테크노밸리(MTV)에 있는 포장상자 자동접착기 전문업체 에이스기계에 기계 제작을 의뢰했다. 이철 에이스기계 대표는 “상자를 고속으로 정교하게 제작하는 기계를 개발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뒷면에 친환경 점착제를 바르는 공정까지 한꺼번에 자동화하는 게 더 힘들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속 제작되는 골판지 상자가 작업 중 한 바퀴 뒤집히는 ‘트위스트 기술’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최근 시간당 1만 개의 날개박스를 제작할 수 있는 설비를 완성했다. 설비 길이는 20m에 이른다. 모터 컨트롤러 등 무려 2만여 개의 부품이 들어갔다.

에이스기계와 함께 해외 진출 추진

택배상자 주문이 속속 들어오고 있다. 황 부장은 “배달의민족과 록시땅코리아에서 상자를 주문받았다”며 “미국 유럽 수출에도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포장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환경 오염도 막을 수 있어 관심이 높다”고 덧붙였다.

날개박스는 에이스기계와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 이 대표는 “날개박스와 에이스기계가 힘을 합쳐 글로벌 시장에 도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가 1993년 창업한 에이스기계는 포장상자 자동접착기를 제작해 수십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상자 자체에 굴곡을 주는 3차원 작업 병행 기능 등을 갖춘 기계를 제작하고 있다. 이 설비는 화장품 음료수 과자 생필품 공산품 등의 상자를 제조하는 데 쓰인다.

두 회사는 ‘테이프는 물론 완충재도 필요 없는 택배상자’를 연내 내놓을 계획이다. 황 사장은 “골판지상자를 입체적으로 접으면 굴곡이 형성돼 그 자체가 쿠션 역할을 한다”며 “이를 사용하면 ‘뽁뽁이’나 스티로폼을 넣지 않아도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