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천재들의 각축장
바티칸 미술관을 방문한 사람들은 복잡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회랑을 지나면서 고대 로마의 조각과 라파엘로의 방들을 거쳐 시스티나 성당에 다다른다. 작은 문을 통해 성당에 들어서면 모든 이의 눈이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향해 천장으로 향한다.

‘천지창조’는 폭 13m, 길이 41m의 천장에 그려진 불후의 명작이다. 미켈란젤로는 1508년부터 4년간 거의 혼자서 이 대작을 그려냈다. 창세기의 아홉 장면을 그린 ‘천지창조’가 위대한 이유는 세계 최대 천장화라는 점뿐만 아니라 화면에 채워진 초인적인 재능과 열정에 있다. 이 그림의 제작 과정에는 많은 일화가 있지만 화가의 눈에 비치는 어려움은 당시를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벅찰 지경이다. 20m 높이 비계에 홀로 앉아 눕다시피 뒤틀린 자세로 4년 동안, 그것도 한 번도 그려보지 않은 프레스코 기법으로 쉬지 않고 작업한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한 어려움이었을 것이다.

프레스코는 모래와 소석회를 섞은 모르타르로 벽을 바르고 수분이 남아 있는 동안 그림을 그려야 하는 까다로운 작업이다. 벽면이 마르면서 단단해지면 수정할 수 없기 때문에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 회벽이 발라지는 동안 한순간도 쉬지 못하고 그림을 그려야 한다. 게다가 곡면으로 된 천장에 그려야 하는 까닭에 목을 꺾고 쳐다보며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붓에서 흘러내리는 물감이 얼굴에 떨어진다. 고된 노동의 결과 미켈란젤로는 목이 휘고 허리가 굽어버릴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물리적인 어려움뿐이었을까. 성당 벽면에는 이미 보티첼리와 페루지노, 기를란다이오 같은 당대의 대가들이 그린 모세와 예수의 생애를 주제로 한 벽화가 있었다. 그림을 그려 보지도 않았던 그가 선배 거장들의 벽화들 사이에 서서 텅 빈 천장을 바라볼 때 느꼈을 압박감은 짐작하기도 힘들다.

거대한 절벽 앞에 선 미켈란젤로로 하여금 후대의 걸작을 그리도록 한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24세에 ‘피에타’를 조각하고 30대 초반에 ‘다비드’와 ‘줄리아노’, ‘로렌초’의 묘를 장식한 조각들로 인정받고 있던 그에게 시스티나 성당 천장을 그림으로 채우라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주문은 애초 실현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미켈란젤로는 이것이 자신을 교황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라파엘로와 브라만테의 계략이라고 여기고 강력하게 항의한 다음 로마를 떠나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몇 년 뒤 이 작업을 시작한 그의 가슴에는 불가능에 도전하고자 하는 열정과 걸작을 남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거장들의 벽화를 보며 경쟁심이 발동하지 않았을까.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르네상스를 일컬어 ‘천재들의 각축장’이라 했다. 당시는 각지에서 몰려든 천재들이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밀라노, 시에나 등지에서 실력을 겨루던 시대였다. 피렌체 세례당 청동문 공모를 두고 벌인 기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의 경쟁, 팔라초 베키오의 벽면을 장식할 벽화로 겨룬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한 판 승부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천재들의 각축이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젊은 천재들에게도 미켈란젤로의 재능과 열정은 준비돼 있다. 미켈란젤로의 천재성과 열정을 불태울 수 있었던 환경이 우리네 젊은 미래들에게도 주어진다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를 주름잡는 선수들처럼, 쇼팽 콩쿠르에서 대상을 차지한 조성진처럼 그림판에서도 세계를 누비는 젊은 화가들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