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자문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해직자 노조 가입 허용, 공무원 가입 범위 확대 등을 규정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마쳤다고 한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경사노위 합의를 존중한다는 입장이어서, 이달 국회에 경사노위의 의견이 제출되면 협약 비준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노사 간 이해가 첨예한 이슈를 ‘친(親)정부, 친노조’ 위원들이 포진한 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관행·제도개선위원회’(노사관계위)가 앞장서서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한국은 8개 ILO 핵심 협약 중 지금까지 4개를 비준했다. 정부는 ILO 창립 100주년인 내년까지 나머지 4개도 비준하는 일정을 잡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결사의 자유와 관련된 87호와 98호, 강제노동 금지와 관련된 29호와 105호 등이 비준대상 협약이다. 이 중 87·98호가 해고자의 노조 가입, 공무원·교사의 노조 결성 및 가입, 노조 설립요건 등 특히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 협약이 비준되면 법외노조인 전교조의 재합법화 길이 열린다. ‘6급 이하’ 일부 직군 공무원으로 제한된 노조 가입대상 공무원도 대폭 확대된다. ILO 협약 비준은 ‘글로벌 스탠더드’이자 ‘노동선진국’으로 가는 필수과정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하지만 노사 관계에 메가톤급 영향을 불러올 것이 뻔한데도 파급효과 등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도 없이 강행한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총 14명의 노사관계위원 중 경영계 추천 4명을 뺀 10명이 친노조·친정부 인사라는 점도 졸속결정을 걱정케 하는 대목이다. 친노조 성향인 최저임금위원회의 급격한 최저임금 상향 조정이 큰 후폭풍을 몰고 온 것과 같은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87 체제’ 이후 노사정책이 노조에 유리한 방향으로 일관됐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ILO 비준이 가세하면 기울어지다 못해 ‘뒤집힌 운동장’이 될 판이다. 많은 나라가 ILO 협약을 비준했다지만, 각자의 사정이 우선돼야 한다. 8개 협약 중 미국이 2개, 일본이 6개 비준에 그친 이유일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로 말하자면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등 경영계 요구를 우선 논의하는 게 순서다. 선진국 중 한국은 파업 시 대체근로자 투입이 금지된 거의 유일한 나라다. 일상이 된 사업장 점거 파업 역시 외국에선 엄격하게 통제된다. 단체협약 유효기간도 미국 독일은 규정 자체가 없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1년 단위인 사업장이 상당수다. 노조에 유리한 것만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쳐서는 안 된다. 최소한의 균형감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