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주주자본주의, 하려면 제대로 해야
미국 시카고 토박이인 윌리엄 쉴렌스키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야구팀 시카고 컵스의 주식 2주를 선물받았다. 하지만 시카고 컵스가 58년 동안이나 월드시리즈에 한 번도 진출하지 못하자 그는 1966년 구단주와 이사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시카고 컵스는 홈구장인 리글리 필드에 야간 조명을 설치하지 않은 거의 유일한 구단이었다. 최대주주이자 구단주인 필립 리글리는 ‘야구는 낮에 하는 스포츠’라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재판에서 쉴렌스키는 “야간 경기를 하지 못해 구단이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고, 이는 결국 팀의 실력 저하로 이어져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이에 리글리 구단주는 “밤에 리글리 필드에 불을 켜면 이웃 주민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논리를 폈고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경영진이 주주의 이익보다 지역사회, 노조, 정부 등 이해관계자의 이익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을 법원이 허용한 판례로 아직까지 회자된다.

최근 국내에서는 ‘경영진과 이사회는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주주 자본주의’가 힘을 얻는 분위기다. 역설적이게도 진보 성향인 현 정부가 주주 자본주의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7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주주권 행사 원칙)를 도입한 게 대표적이다. 국내 웬만한 대기업 지분을 10% 가까이 들고 있는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면 기업 지배구조가 개선돼 주가가 올라가고 국민의 노후자금도 불어날 것이란 논리다.

드디어 영미식 주주 자본주의가 국내에서도 꽃피울 것이란 기대가 나오지만, 투자업계는 개운치 않은 표정이다. 과연 정부가 진짜 주주 자본주의를 독려하려는 건지, 아니면 재벌개혁 같은 정책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건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국민연금이 순수한 주주인지, 아니면 주주의 탈을 쓴 이해관계자인지 명확하지 않아서다. 최상위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구성부터가 그렇다. 일단 위원장이 국무위원인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정부는 대표적인 이해관계자다. 정부의 정책이 주주의 이익에 배치되면 복지부 장관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진짜 주주라면 위헌소송이라도 불사해야 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도 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기금위 개편안은 오히려 독립성 강화에 역행한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 이사의 선량한 관리자 의무 강화 등 소액주주 권리 보호를 위한 제도 마련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는 점도 정부가 주주 자본주의에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 의심이 가게 하는 대목이다.

일본에서는 아베 신조 총리가 ‘아베노믹스’의 일환으로 주주 행동주의를 독려해왔다. 이후 일본 기업들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뚜렷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었다. 한국과 다른 점은 일본의 국민연금 격인 일본 공적연기금(GPIF)은 직접 주식을 보유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주식 운용과 의결권 행사를 100% 민간 위탁운용사에 맡긴다. 주주 자본주의에 이해관계자가 개입할 여지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다.

리글리 필드에 야간 조명이 켜진 것은 쉴렌스키 재판이 끝난 뒤 20여 년이 지난 1988년이었다. 이후 시카고 컵스 경기의 흥행은 리글리 필드가 있는 리글리빌 지역경제에도 큰 도움이 됐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진짜 주주 자본주의를 원한다면 이해관계자는 빠져야 한다. 국민연금 기금위에서 복지부 장관을 제외하는 게 그 첫 번째 순서다.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