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블루오션 시프트] 중소기업을 넘어 벤처로
피터 드러커는 교과서를 최고의 혁신 사례로 꼽았다. 교과서가 나오기 전에는 학생들의 학습 수준이 교사들 ‘실력’에 크게 좌우됐다. 표준적인 교과서가 나오자 평균 이하 실력을 갖춘 교사들도 일정한 수준 이상의 수업을 할 수 있게 됐다.

드러커가 좋아한 또 다른 혁신 사례는 우표다. 이전에 편지를 부치기 위해 우체국까지 반드시 나와야 했던 사람들은 이미 요금을 냈음을 증명하는 우표 덕분에 동네 우체통까지만 걸어가면 됐다. 혁신은 이렇게 세상을 바꾸고 회사를 발전시킨다.

그러나 혁신가의 길은 험난했다. 교과서나 우표를 만든 사람도 당시에는 부정적인 시각과 오래된 관습과 싸워야 했을 것이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혁신가에게 모든 짐을 지우는 경향이 있다. 자금을 구하는 것도, 기술을 검증하는 것도 혁신가의 몫이었다. 스티브 잡스조차 자신이 창업한 애플에서 해고되는 수난을 겪을 정도였다.

최적생산 가능해진 高기술기반

그런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혁신가가 되기에 너무 좋은 시절이다. 소위 4차 산업혁명이 논의될 만큼 기술은 고도화되고, 저렴해지고 또 쓰기 쉬워졌다.

시제품 모형을 제작하는 과정을 직접 체험한 적이 있다. 기업용 가상현실(VR) 기기를 쓰고 자동차 모형을 직접 만들어 보았다. 가상의 마우스로 기본 골격을 세우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위아래 뒷모양까지 다듬고 색도 칠했다. 완성된 파일을 저장해 3차원(3D)프린터로 옮기면 끝. 자동차 모형이 뚝딱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VR뿐만 아니다. 인공지능(AI) 로봇기술 사물인터넷(IoT) 생명과학 등의 기술이 상호 연결되면서 생산 과정의 최적화가 가능해졌다. 데이터를 분석해 가장 많은 사람이 원하는 상품을 찾아내고, 그것도 소비자가 가장 필요로 할 때 원하는 바로 그 장소까지 보내주는 작업을 상호 연결된 기계들끼리 알아서 수행하는 새로운 유통 방식도 열렸다.

기술만 좋아진 게 아니다. 벤처 창업을 한다고 하면 정부 지원 자금이 기다리고 있고, 여러 명이 나눠 도와주는 크라우드 펀딩도 가능해졌다. 제법 괜찮은 아이템이면 외국 투자를 끌어당기기도 쉽다.

데이터 수집에 혁신기회 있다

그러나 미국이나 중국의 창업 열풍에 비해 여전히 국내에서 창업은 위험한 도박쯤으로 취급받는다. 실패경험을 인정하지 않는 풍토 탓이기도 하거니와 스스로 ‘만난’을 이겨낼 용기를 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더 큰 문제는 기존 중소기업들이다. 많은 중소기업이 4차 산업혁명을 남의 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글로벌 대기업 정도라야 꿈꿔 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위기다. 그러다 보니 해오던 것만 생산하고, 여기에다 구인난이라는 악순환까지 겹치면서 더욱 옹색해지고 있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중소기업에 더 많은 기회가 생긴다. 자본, 기술이 아니라 혁신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블루오션전략의 원래 이름 그대로 가치혁신을 한다면, 즉 시장이 충족하지 못하고 있는 가치를 담은 상품을 창출해 낸다면 글로벌 초대형 히트도 가능해진 환경이다.

그러기 위해선 데이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선 제조공정에 숨어 있는 데이터부터 수집하면 좋다. 저렴해진 폐쇄회로TV(CCTV), IoT 기기를 활용하면 수집·축적·분석을 자동화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 데이터를 분석해 불량률을 최소화하고, 트렌드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상품을 찾아내는 작업 등을 통해 중소기업은 자체적인 4차 산업혁명에 불을 댕길 수 있다. ‘혁신 벤처’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