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미술품을 '귀로 산다'는 씁쓸한 이야기
최근 열린 한 미술품 경매에 추사 김정희의 간찰(簡札·편지)이 몇 점 출품됐다. 경매 결과가 궁금했는데 대부분의 작품이 유찰됐다고 했다. 마침 한 원로 미술사학자가 제기한 추사 글씨에 대한 진위 논란 때문이었다고 했다. 경매에 출품된 작품과는 상관이 없는 논란이었고, 경매에 나온 간찰들은 충분한 검증 과정을 거쳤을 터인데도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르네상스의 본고장 이탈리아 피렌체에는 도처에 거장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시뇨리아광장의 팔라초베키오 앞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은 피렌체 르네상스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은 피렌체에 세 점이 있다. 원본은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고 다른 하나는 청동으로 주조돼 미켈란젤로광장의 높은 좌대 위에서 피렌체를 굽어보고 있다. 원본 이외의 것들은 미켈란젤로가 만들지 않았지만 보는 이들은 개의치 않는다. 원본은 워낙 아우라가 돋보이게 전시돼 있어서 그렇다 치더라도, 원래 있던 위치에 있는 모조품도 가짜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안에도 가짜가 있다. 출구 쪽 회랑 끝에 있는 라오콘상이 그렇다. 원작은 바티칸 미술관의 벨베데레 정원에 있다. 라오콘상에는 미켈란젤로와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 라오콘상이 발굴됐을 때 미켈란젤로가 감정을 맡는 바람에 발굴작이 그가 만든 위작이란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실제로 미켈란젤로는 젊은 시절에 고대 조각의 위작을 만들기도 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그가 만든 가짜 조각을 구입한 교황청의 고위 성직자가 미켈란젤로에게 그 재주를 살려 작품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서성(書聖) 왕희지가 중국 산음 난정(蘭亭)에서 당대 명사 40여 명과 풍류를 즐기며 지은 시를 모은 시집에 서문을 썼다. 이것이 최고의 행서로 유명한 ‘난정서’다. 난정서는 왕희지 가문을 통해 전해져 내려오다 지영의 제자 변재가 보관하게 됐다. 워낙 탐내는 이들이 많아 없어졌다고 소문을 내고 숨겨 뒀던 이 보물은 왕희지의 글씨를 열렬히 수집했던 당 태종의 손에 들어갔다. 당 태종은 평생을 곁에 두고 아끼다가 무덤까지 가지고 들어갔다. 지금 전하는 것은 정관(당 태종의 연호) 연간에 베낀 것과 그것을 다시 베낀 것들이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서예가 구양순, 저수량 등이 임서한 ‘가짜’들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비교해 보면 대체적인 골계는 비슷하나 각각의 성격이 뚜렷해 차이가 현격함을 알 수 있다.

추사로 돌아가 보자. 간찰들이 다른 글씨의 진위 시비에 영향을 받아 유찰됐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글씨를 보는 눈이 있다면, 그 작품이 정말 좋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터인데 말이다. 추사의 절친 중에 영의정을 지낸 이재 권돈인의 글씨는 언뜻 보면 추사의 글씨와 흡사하다. 어떤 이는 추사보다 격이 높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가격은 추사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할뿐더러 찾는 이도 별로 없는 모양이다. 글씨가 좋아 가지려는 게 아니고 돈이 되니까 가격표를 보고 산다는, 그래서 미술품을 ‘눈이 아니라 귀로 산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여름마다 열리는 영국 왕립미술원의 연례전시는 2만원가량 하는 비싼 입장료에도 관람객들로 늘 만원이다. 높은 벽에 빈틈없이 걸린 그림들과 100개 이상 빨간 딱지가 붙은 판화들. 이게 영국 미술 파워의 근원이구나 싶다. 내 눈으로 직접 고른 그림이 아니라 귀로 사는 우리네 형편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