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유령 회사나 조세피난처를 경유하는 역외탈세는 후진국형 조세 범죄다. 국부(國富)를 빼돌리는 반(反)국가적 행위임은 물론이다. 그제 국세청 발표를 보면, 기업인과 연예인들이 단골처럼 포함된 역외탈세가 아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적발 건수와 추징세액 모두 늘어나고 있어 경각심을 일깨운다.

다수의 건전한 성실납세자를 우롱하는 역외탈세는 근절돼야 마땅하다. ‘유리지갑 봉급쟁이’에 이어 요즘은 ‘사업자도 유리지갑’이라는 말이 익숙할 정도로 세원(稅源)관리와 과세 행정망이 잘 갖춰져 가고 있다. 그래도 취약지대가 있는 게 조세다. 국제조세뿐 아니라 통상·공정거래 등 정부가 대외·국제 행정의 역량을 키워야 할 분야가 많다. 국제관계가 개방될수록 이런 쪽의 전문성은 더욱 중요해지게 마련이다.

더불어 차제에 돌아봐야 할 것은 자본 도피를 부추기는 요인이 우리 내부에 없는가 하는 점이다. ‘대한민국 사회는 과연 세금 납부에 긍지를 느끼게 하며, 기꺼이 세금을 내고 싶은 나라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냉철하고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세금은 각자 형편에 맞춰 고루 분담하며, 내가 낸 세금이 나라 발전에 제대로 쓰이고 있나’라는 기본 질문을 두고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는가. 여기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할 공직자는 얼마나 될까. 470조원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보면서 더욱 절실해지는 문제 제기다.

악화일로의 고용상황부터 그렇다. 지난해와 올해 54조원, 내년도 편성액 23조원의 ‘일자리 예산’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길래 고용성적이 ‘참사’ 수준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는가. 이런 지출이 고용예산뿐인가. 그러면서 세금 징수는 너무도 쉽게 여긴다. 논란과 우려 속에 법인세를 올려 경기에 악영향을 주더니, 이번에는 보유세 중과방안이 나왔다. 정책의 실패를 세금 강화로 시장에 전가하겠다는 식이다. ‘시장의 보복’을 우려하기에 앞서 과세권 남용이 걱정된다.

요즘 “있는 것 없는 것 다 정리해 자식들을 해외로 보내버리고 싶다”고 하는 납세자가 적지 않다. 속상해서 하는 말이겠지만, 세금 내는 보람은커녕 고액 납세자를 바라보는 시선조차 곱지 않은 사회에 대한 푸념 이상의 의미로 들어야 할 것이다. 역외든 역내든 탈세는 엄단해야 한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세금 납부에 나서게 하는 풍토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성실한 납세자는 존중받는 사회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