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은 중국 춘추시대 정(鄭)나라다. 한 사람이 신발을 사러 집을 나섰다. 출행에 앞서 그는 끈으로 자신의 발을 쟀다. 시장에서 제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사기 위해서였다.

장에 도착해 신발 파는 사람을 찾았으나 그는 발을 쟀던 노끈이 집에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바로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 급히 끈을 찾아 시장으로 다시 향했다. 하지만 신발을 팔던 상인은 이미 철시했다. 난감한 표정으로 저잣거리에 서 있던 그에게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사람들 중 하나가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끈으로 잴 필요가 뭐 있어? 당신 발로 직접 신발을 신어 보면 그만이지.”

《한비자(韓非子)》에 실렸던 이 우화의 내용은 鄭人買履(정인매리)라는 성어로 자리 잡았다. 제가 잔뜩 믿는 것만 내세우는 사람, 실제의 경우보다는 관념적인 소신에만 집착하는 사람 등을 일컫는다. 흔히 믿음의 형태로 굳어진 교조(敎條)에 매달려 현실세계의 이치를 외면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국시대 약한 나라를 도와 방어술을 전수했던 묵자(墨子)의 방도에 지나치게 의존해 실질을 놓치고 마는 묵수(墨守), 묵수성규(墨守成規)라는 성어도 그 흐름이다. 배 위에 있다가 검을 물에 빠뜨린 뒤 타고 있던 배에다가 검을 빠뜨린 곳을 표시하는 각주구검(刻舟求劍)의 어리석음도 이와 유사하다.

길이와 폭을 가장 잘 맞출 수 있는 제 발을 놔두고서 그를 쟀던 끈에만 집착하는 것은 뿌리와 가지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본말전도(本末顚倒)의 성어도 마찬가지 뜻이라고 볼 수 있다.

이상과 목표만 거룩하면 그만일까.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 등장하는 수많은 변수에 옳게 대응해야 먼 길을 갈 수 있다. 그래서 늘 회고와 성찰, 그에 이어 아우르며 고쳐가는 조정(調整)의 절차가 필요하다.

뒤로 물러서는 일은 사실 용기가 필요하다. 오류가 생기면 이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옳다. 그래서 ‘용퇴(勇退)’라는 말이 나왔다. 후퇴에는 용기가 필요해서다. 이 말을 새겨들어야 할 정책 담당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유광종 <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