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가 행정안전부와 함께 ‘자치분권 종합계획’을 내놨다. 지난해 발표된 ‘문재인 정부 자치분권 로드맵’을 조금 더 구체화한 것이다. 법령 제·개정 사항은 이번 정기국회에 일괄 정부안으로 간다고 한다.

두 가지가 가장 주목된다. 주민이 조례의 제·개정안은 물론 폐지안까지 바로 낼 수 있게 하겠다는 것과 주민소환을 더 쉽게 하겠다는 것이다. 지금은 주민들이 조례 관련 안을 지방의회에 내달라고 지자체에 청구만 할 수 있다. 온갖 민원이 다 포함되는 주민들 요구를 지방행정 기관인 시·도나 시·군·구에서 전문적인 식견으로 걸러내라는 취지다. 이런 과정 없이 주민들이 지방의회와 바로 조례를 만들고, 고치고, 없애는 것까지 할 수 있을 때 빚어질 혼란도 예상해야 한다. 기업이나 사업자에게는 종종 헌법보다 더 무서운 게 규제 조례다.

주민소환제를 활성화하겠다는 것도 선거직에 대한 견제 강화라는 취지는 좋다. 하지만 이 역시 악용될 여지가 다분하다. 가뜩이나 우리 사회는 곳곳에서 ‘정치 과잉’ 현상이 심화되고 있고 진영논리도 과도하다. 기초 지자체 선거까지 정당 간 대결에 함몰되고 정치색이 강한 사회단체도 늘어났다. 툭하면 주민소환이 발의돼 자치행정의 발목을 잡지는 않을까. 앞서 확정된 국책사업까지 무산시킨 사례에서 보았듯이 주민투표의 요건 완화도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많은 행정이 그렇듯, 자치행정 강화에도 양면성이 분명하다. 가장 큰 걱정은 주민자치권 확대가 대의민주주의의 근본을 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지방행정의 현실이 과연 이상을 담보해낼까 하는 우려다. 내실 있는 분권 차원에서는 다른 중요한 것도 많다. 무엇보다도 지방의 경쟁력 강화로 재정자립도를 높이고, 적절한 인구를 유지하면서, 중앙에 덜 기대는 방안 찾기가 우선돼야 한다.

정치나 행정에서 대의민주주의가 최선이라고 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사회적 갈등을 줄이고 전문성도 높인다는 측면에서 지키며 가꿔나갈 가치가 있다. 국회도 관련 법률안을 심의할 때 이 점을 눈여겨보기 바란다. 국회 스스로도 갈등 현안을 원내로 제대로 수렴하지 못할 경우의 혼란과 그에 따른 국가사회적 대가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대의민주주의가 부정되면 극단적으로는 ‘만인 대 만인의 이권투쟁 사회’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 진짜 위험은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