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의뢰 유전자검사(DTC)’ 허용 범위 확대가 연내 실현될 가능성이 사실상 희박해지면서 관련 업계는 “또 1년을 기다리란 거냐”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한경 9월11일자 A18면 참조). 보건복지부가 발주한 용역보고서에 ‘DTC 제도 개선 민관협의체’가 허용을 추진했던 검사항목 수가 줄어든 데다, 시범사업을 거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예상돼서다. DTC 범위 확대에 부정적인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보다 복지부의 규제완화 의지 부족이 더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규제완화를 손꼽아 기다려온 유전자검사 기업들이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이미 충분히 검토했는데 또 시범사업을 거치겠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며 “본사를 해외로 옮겨야겠다”는 기업도 있다. 복지부가 “시범사업으로 규제완화를 회피한다”는 의구심을 산 게 DTC만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데이터 경제 활성화 규제 혁신’을 강조하고 나섰지만, 여기서도 복지부는 “빅데이터 시범사업으로 의료정보 활용 논의를 쌓아가겠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국립암센터·국민건강보험공단·질병관리본부 등이 보유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게 복지부 설명이지만, 언제쯤 의료정보 활용이 본격화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물론 시범사업이 꼭 필요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규제환경에서는 시범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게 문제다. 시민단체, 이익단체 등이 뛰어들어 시범사업을 본사업을 방해하는 용도로 악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권이 몇 번이나 바뀌는 동안 복지부가 시범사업만 벌이고 있는 원격의료가 단적인 사례다. 한국이 이러는 사이 선진국은 원격의료는 물론이고, 이에 기반한 의료기기 개발, 디지털헬스 서비스 등에서 질주하고 있다. 유전자 검사, 의료 빅데이터 등도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이 없다. 보건의료 산업을 키우려면 복지부부터 개혁해야 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