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또 '메가 프로젝트' 타령인가
‘13대 메가 프로젝트’(2013년 12월), ‘13대 미래성장동력과 13대 산업엔진프로젝트’(2014년 3월), ‘19대 미래성장동력’(2015년 3월), ‘10대 미래성장동력’(2016년 3월), ‘9대 국가전략프로젝트’(2016년 8월)…. 박근혜 정부는 이러다 끝났다.

주력산업의 뒤를 이을 성장동력을 말하지 않은 정부는 없었다. 김대중 정부는 정보기술(IT), 바이오기술(BT), 나노기술(NT), 환경기술(ET), 문화기술(CT) 등 이른바 ‘5T’ 차세대 성장산업을 들고나왔다. 노무현 정부는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지능형 로봇 등 10대 산업을, 이명박 정부는 ‘신성장동력’으로 녹색기술산업 등 3대 산업군을 각각 제시했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 성장동력은 현란함의 결정판이었다.

이대로 됐으면 우리나라는 벌써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가득 찼어야 한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건가.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말은 ‘탈(脫)추격’ 혁신인데 방식은 1960~1970년대 박정희 시대 ‘추격’ 레짐 그대로다. 그것도 정권마다 ‘큰 거 한 방’으로 끝내려 하니 될 턱이 없다.

‘적폐청산’에 ‘혁신성장’을 외치는 문재인 정부도 같은 길을 걸으려 한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경제부처 장관들은 최근 비공개 회동에서 이렇게 입을 모았다고 한다. “현 경제상황을 헤쳐나가고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메가 투자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혁신성장의 속도가 더디다는 대통령 지적에 기재부가 혁신성장본부를 출범시키더니 결국 내놓는 건 국가 투자 프로젝트다. 정부가 출범하면서 지정한 혁신성장 8대 선도사업으론 부족하다는 논리도 더해진다. 그중 단 한 개도 제대로 되는 게 없는데 ‘조 단위’ 국가 프로젝트라니, 앞 정부를 닮아가기 바쁘다.

‘소득주도성장’처럼 존 메이너드 케인스를 끌고 들어와 혁신성장을 위한 ‘뉴딜’로 이해해 달라는 건지도 모르겠다. 케인스를 파는 거야 그들의 자유지만, 그래도 케인스는 ‘정부는(관료는) 공정하고 유능하다’는 ‘하비 로드의 전제’라도 깔고 출발했다.

묻고 싶다. 우리 정부는 공정한지는 둘째 치고 메가 투자를 어디에 할지 알 만큼 유능하냐고. 국가가 메가 프로젝트라고 깃발만 꽂으면 기업이 우르르 따라갈 거라고 믿느냐고. 추격시대 발전국가 레짐의 유산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기재부에 혁신성장의 키를 준 것부터 코미디란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국가 메가 프로젝트는 규제개혁을 할 자신이 없는 무능한 정권의 단골메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갈수록 짙어진다. 이 정부만 해도 시민단체의 규제개혁 반대 논리가 허구로 가득 찼는데도 ‘공론화’ 운운하고 있는 게 그렇다. 이건 리더십의 문제다.

더불어민주당이 야당 시절 박근혜 정부의 국가전략프로젝트 예산을 깎아야 한다며 했던 말 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게 있다. “기업이 더 잘할 수 있다.” 야당이 이런 얘기를 할 때도 있나 싶었다. 그렇다. 기업이 정부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게 넘치는 시대로 가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정부의 전통적인 영역으로 간주돼온 우주·환경·에너지·보건에 기초과학까지 기업이 도전하지 않는 분야가 없을 정도다. 복지나 사회문제라고 정부가 꼭 해결하라는 법도 없다. 우리 정부가 걱정하는 미세먼지 문제도 어쩌면 기업이 더 빨리 해결할지 모른다. 누가 혁신성장 주체인지 분명하지 않은가.

정부가 직접 해외 글로벌 기업들과 싸울 것도 아니다. 지금 필요한 프로젝트는 국가가 주도하는 ‘메가(mega)’ 투자가 아니라, 기업이 주도하는 ‘매스(mass)’ 투자다. 대기업·중소벤처기업·스타트업 할 것 없이 봇물 터지듯 쏟아내는 투자 프로젝트 말이다. 규제개혁이 절박한 건 바로 그래서다. 정부 여당이 경제로 심판받을 총선이 그리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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