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반도 新경제지도 구상'이 성공하려면
4·27 판문점 선언 이후 문재인 정부의 대북(對北) 경제정책인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이 주목받고 있다. 남북한 당국은 지난달 1일 판문점에서 열린 고위급회담에서 4·27 판문점 선언의 후속조치 이행계획에 합의했고, 이를 토대로 철도·도로·산림협력 분과회의를 잇달아 열었다. 우리는 벌써부터 철도·도로 연결 및 그 결과로 예상할 수 있는 ‘경제적 환상’에 들뜬 분위기가 역력하다.

우리는 ‘신경제지도 구상’의 훈풍이 지속돼 마침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이 구상의 맹점은 ‘우리의 선의에 북한이 선의로 응답할 것’이라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북한은 우리의 선의를 악용해 비슷한 경제구상들을 무력화시킨 전력이 있다. 우리가 제안한 경제구상이 물거품이 되곤 한 것은 북한이 몽니를 부리면 경제구상 자체가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구조 아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이 몽니를 부릴 수 없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 대북정책의 핵심이라는 점을 방증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략적 행보가 절실한 이유다.

기존 대북 경제구상들은 북한의 체제변화에 대한 전략 없이 오직 발전 전략에만 초점을 맞췄다. 체제변화 전략이 없는 대북 경제구상은 실패의 위험을 안고 있다는 교훈도 애써 무시했다. 이는 그동안의 대북정책이 실패가 분명한 상태에서 추진돼왔다는 점을 역설한다. 북한의 체제변화 전략을 기초로 발전 전략에 대한 구상을 수립해야 하는 이유다.

북한 체제변화 전략의 핵심은 개혁과 개방이다. 개혁은 비효율적 열성(劣性)의 체제(제도)를 효율적 우성(優性)의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체제의 우열을 구별하는 기준은 ‘지속가능성’이다. 우성 체제인 자본주의 체제는 아직도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열성 체제인 사회주의 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오래다.

옛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가 종말을 고한 것을 보면 북한 사회주의 체제는 열성 체제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북한의 체제개혁 방향은 자본주의 체제로의 이행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또 개방은 열성인 획일적인 폐쇄사회를 우성인 다양한 열린사회로 이행하는 것이다. 북한 개방의 정도는 투자를 받는 쪽이 아니라 투자를 하는 측이 판단하고 투자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흰 고양이건 검은 고양이건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중국 덩샤오핑의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은 구체제 ‘마오 이념’을 실용주의 신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은 이런 이념 전환이 있었기 때문에 개혁·개방에 성공했다. 북한의 개혁·개방은 북한의 철권통치 이념인 주체사상의 전환이 선행돼야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북한의 체제 변화는 북한의 대내적 폭압성과 대외적 폭력성도 제거할 것이란 점에서 발전전략과 직결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대내적 폭압성은 빈곤·인권탄압과 관련된 문제이며, 대외적 폭력성은 국제규범의 일탈행위와 관련된 문제다. 빈곤문제는 산업화로 해결 가능하고, 인권탄압 문제는 민주화로 해결할 수 있다. 또 국제규범 일탈의 문제는 국가 간 상호의존성을 높여나가면서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발전전략은 북한의 산업화 기반을 마련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산업화는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를 부여함으로써 북한주민의 삶의 질을 높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화를 통해 북한 내 사회간접자본(SOC)을 확충하게 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남북한 철도와 도로는 자연스럽게 연결될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남북한 산업구조 조정과 산업지역 재편, 북한의 경제특구와 경제개발구의 발전방안, 동북아의 경제발전 구상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북한 체제변화 전략이 없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은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