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투혼 말고 시스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엊그제 독일과의 경기에서 118㎞를 뛰었다. 상대보다 3㎞ 더 달렸다. 체력이 고갈되는 후반에 더 많이 뛰었다. 그 힘으로 세계 랭킹 1위이자 지난 월드컵 대회 우승국인 독일을 무너뜨렸다.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기적의 투혼을 보여준 경기였다.

훈련장에서도 살벌할 정도로 연습했다. 그런데도 그라운드에서 “죄송하다”는 말을 수십 번 반복하며 눈물을 흘렸다. 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약팀으로서 체력과 투지도 중요하지만, 기술적으로 튼튼하고 전술적으로 강한 팀이 되려면 근본적인 시스템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잦은 감독 교체와 전술적 준비 미흡, 기술 부족, 기본기 결핍에 의한 실수를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는다. 대한축구협회는 2012~2018년 감독을 다섯 차례나 교체했다. 장기계획 없이 여론에 떠밀려 급한 불 끄기에 급급했다. 독일 국가대표팀 감독은 12년째 전차군단을 이끌고 있다.

감독이 소신을 갖고 큰 그림을 그려야 선수들이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 그 위에서 뛰어난 전략과 전술, 기술의 꽃이 피어난다.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어릴 때부터 선수층을 두텁게 키우는 ‘밑으로부터의 혁명’이다.

역대 월드컵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각각 4번씩 기록한 독일은 2000년 유럽선수권 조별예선에서 탈락한 뒤 대대적인 개혁과 시스템 정비에 나섰다. 특히 유소년축구에 과감하게 투자했다. 그 결과 ‘전차군단’의 위용을 되찾았고, 2014년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잉글랜드도 유소년축구 육성에 사활을 걸었다.

우리는 어떤가. 긴 안목으로 선수를 키워낼 지도자가 부족하다. 우승을 못 하면 쫓겨나는 풍토에서 단기 성적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이러니 세계 축구 흐름에 자꾸 뒤처진다. U-18 독일대표팀 코치를 지낸 미하엘 뮐러도 “유소년 육성에 투자해야 미래가 열린다”고 강조한다.

한국 축구가 감동적인 ‘그라운드의 오케스트라’로 거듭나려면 관객도 바뀌어야 한다. 스페인 프로축구팀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은 거의 매번 8만 명의 관중으로 꽉 찬다. 우리 K리그는 평균 5000명에 불과하다. 국내 경기는 외면하다가 월드컵 등 국제경기가 벌어질 때만 달아오르는 냄비 근성도 버려야 한다. 선수들이 흘리는 눈물의 절반이 국내 팬들의 ‘악플’ 때문이라니 더욱 마음이 아프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