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올해 하반기부터 경기가 꺾일 것이라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이 “올해 하반기에 세계 경기가 하향 흐름으로 돌아서는데, 국내 경기가 더 먼저 꺾이고 더 빨리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한국공인회계사회는 회원을 대상으로 경기실사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상반기 89, 하반기 82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BSI가 100을 넘으면 경기 확장, 미만일 경우 경기 위축 전망이 우세하다는 뜻이다. 설상가상으로 반도체 경기도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공급이 시작되는 하반기부터 본격 침체 국면에 들어갈 것이라는 분석이 한국경제연구원 세미나에서 나왔다.

정부·여당도 이런 걱정을 알고 있는지 그제 열린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앞으로 선거가 없는 1년10개월 동안 경제에 집중해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이를 위한 해법이 규제혁신이 아니라 ‘상상 이상의 깜짝 놀랄 만한 확장적 재정대책’이어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재정지출을 깜짝 놀랄 정도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했고, 김동연 부총리는 “충분히 검토해서 탄력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답변했다.

정부는 이미 내년 5.7%로 예정된 중기재정 운용 계획상 재정지출 증가율을 더 높이겠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여당에서 이런 주문이 나온 것은 재정을 통한 저소득층 소득 보전과 일자리 창출 등 ‘소득주도 성장정책’을 더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정부 재정은 최근 수년간 경제성장률을 2~3배 웃도는 증가세를 보여왔다. 매년 일자리 창출을 이유로 대규모 추가경정예산도 편성해왔다. 앞으로 몇 년은 가능하겠지만 경제성장률이 둔화하면 재정은 바닥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재정에 더 많이 의존하는 정책을 펴겠다는 것은 재원 조달 방안이나 성장전략 없이 ‘기-승-전-돈풀기’만 한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이날 회의에서도 시장을 활성화하는 규제 혁신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1년 넘게 말만 나온 ‘규제 샌드박스’ 관련 법안을 조기에 입법화하겠다는 방침만 되풀이했을 뿐이다. 4차 산업혁명 구호만 요란할 뿐, 관련 사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풀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카풀서비스업체인 풀러스의 위기 사례가 대표적이다. 서울시와 국토교통부가 이해당사자인 택시노조 눈치를 보면서 끌려다니는 사이에 서비스를 못 하게 된 풀러스는 결국 사장이 사퇴하고, 직원 70%를 해고할 위기에 처했다. 오죽하면 회사 대표가 “법원에서 우리 서비스의 불법 여부를 판정하게 정부가 우리 회사를 고발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겠는가. 정부가 소비자 후생이나 신사업 육성보다 기득권 보호에 안주하고 있으니 규제 완화나 혁신성장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그제 내놓은 ‘한국 경제 보고서’도 적지 않은 충고를 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생산성 향상이 없으면 최저임금 인상은 물가를 올리고 한국의 국제경쟁력에도 타격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공공부문에 대한 고용 및 사회지출 확대는 인구 고령화에 따른 비용 감당을 어렵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와 여당은 “정부가 시장보다 효율적이지 않고, 세금으로 만든 일자리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새겨들어야 한다. “정부가 기득권을 모두 내려놓고 과감하게 규제를 혁파해서 경제를 살려보겠다”는 얘기를 언제쯤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