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新 성장동력, 바이오·제약산업서 찾아야
‘갈 길은 먼데 해는 서산에 진다.’ 구(舊)성장동력은 말라 가는데 신(新)성장동력 발굴은 요원하다는 은유다. 최근 반도체를 제외한 자동차, 철강, 조선, 디스플레이의 견인력이 예전 같지 않다. ‘반도체 외끌이’로만 추가적인 성장을 이끌기에는 역부족이다. 포스트 중후장대(重厚長大)와 포스트 반도체로 바이오·제약산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제약 시장 규모는 2016년 현재 1조1000억달러로, 단일 시장으로는 세계 최대다. 같은 해 반도체의 글로벌 거래액은 3400억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국내 의약품 시장 규모는 2016년 현재 21조원으로, 글로벌 시장의 1.7%에 불과하다. 뒤집어 보면 그만큼 성장 여력이 크다는 얘기일 수 있다.

제약산업에 눈을 돌려야 하는 본연의 이유는 생명 연장과 삶의 질 향상이다. 2012년 국내의 한 연구에 따르면 사망률 1% 하락에 따른 국가의 경제적 가치 창출은 최대 126조원에 이른다. 2007년 미국경제조사국(NBER) 연구에 따르면 혁신 신약에 1달러를 투자하면 비효과적인 약제 사용 및 질환 관리에 들어가는 7달러 이상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한다. 노령화와 생산 가능 인구 감소 압박을 동시에 받고 있는 우리로선 의료비 절감과 인구 관리 차원에서 제약산업에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굳이 미국에 국한할 필요는 없지만 미국과의 경제 협력 강화를 염두에 두면 제약산업만한 후보는 없다. 글로벌 제약 시장에서 미국은 절대강자다. 2015년 현재 세계 상위 20개 제약 기업 중 미국 기업이 8개이며 미국의 세계 제약 시장 비중은 32%다. 제약산업을 매개로 한 양국의 민간 협력강화는 한국의 제약산업을 키우고 반도체와 자동차 등 미국과의 통상마찰을 줄일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제약산업은 블루오션의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국내 산업 보호에 함몰된 나머지 큰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보건복지부 약가 정책은 2016년의 일명 ‘7·7 약가제도’에 담겨 있다. 주요 내용은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허가받은 신약이거나 국내에서 전(全) 공정 생산하는 경우, 국내 기업과 외국계 제약기업 간 공동 연구개발(R&D)을 통해 허가받은 경우, 치료적 확증 임상시험을 국내에서 수행하는 경우, 혁신 신약으로서 ‘대체 약제 10% 가산’의 특례를 인정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후 나온 약가 개선안은 여전히 지엽적이다. 평가 기간 및 협상 기간 단축을 통한 신속 등재와 특허 기간까지 약제 사용 범위 확대 및 사용량 증가에 따른 약가 인하 유예가 주된 내용이다.

바이오·제약산업은 4차 산업혁명과 유관한 신성장동력의 가능성을 가졌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 전략 산업군이다. 하지만 인센티브를 보강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글로벌이란 단서를 달았지만 국내 개발 신약에 혜택이 국한돼 있어 ‘국내 산업 위주의 편향된 프레임’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은 7·7 약가제도가 국내 기업에 편향돼 있다며 이 약가제도에 불공정성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신약 개발은 조(兆) 단위의 막대한 자본과 10년 이상의 긴 개발 과정을 요한다. 시장을 통해 프로젝트가 조직돼야 하기 때문에 ‘위험 분산’은 필수다. 개방형 혁신이 요구되는 이유다. 결국 국내외 제약기업 간 협력이 관건이다. ‘국내 제약산업 보호’라는 프레임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국내 제약산업의 R&D 비중은 매우 취약하다. 2015년 현재 제약·바이오·의약품의 R&D 비중은 미국 21%, 유럽 18%이지만 한국은 단 2%다. 국내 제약기업들의 R&D 투자 여력이나 신약 개발 역량을 짚어보지 않은 채 국내 기업에 당근을 준다고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 간 협력은 상대방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국적 제약사와 국내 제약사 간 제도적 형평성 논란을 불식시켜야 한다. 투자에 대한 유인과 보상이 글로벌 제약사와 국내 기업에 중립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운동장을 넓게 써야 시장의 역동성이 살아나고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스위스의 1인당 국민소득이 8만달러가 되는 데에는 제약산업의 기여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