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기업이 어려운데 근로자 복지 나아지겠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1년이 지났다. 그동안 펼친 경제정책은 친(親)노동 색채가 짙다. 우선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했다. 올해 적용된 최저임금을 16.4%나 올렸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화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근로시간도 주당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축소하려 한다. 지난 정부에서 강력히 추진한 공공 부문의 성과연봉제는 사실상 폐지했다. 대체 공휴일도 늘렸다. 이런 정책은 경제 양극화를 해소하고 근로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자 하는 데 있다. 정책의 취지는 훌륭한데 과연 기대하는 대로 성과가 날 것인가.

결론적으로 말해 추진 중인 많은 정책은 현실과 시장 기능을 무시한 것이어서 근로자의 생활 여건을 개선하기보다는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시장경제체제에서 근로자를 고용하는 것은 기업이다.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 고용은 대부분 국민 부담이 수반된다. 고용을 늘리고 임금을 올려주려면 기업의 임금 지급 능력이 지속적으로 증가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난 1년간 기업의 임금 지급 능력이 갑자기 커진 것인가. 예를 들어보자.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 근로자는 대부분 편의점, 식당 등 영세한 자영업 사업장이나 중소기업 고용원이다. 이들이 일하는 곳은 한계기업으로 겨우 지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갑자기 임금을 대폭 올려 주라고 하면 올려 줄 수 있나. 많은 기업이 되레 고용을 줄이거나 인건비 부담을 못 견뎌 해외로 공장을 옮길 것이다. 우리나라 섬유산업에서 큰 역할을 해온 경방은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기로 했다. 일부 아파트단지는 경비원을 줄였다. 정부가 중소기업에 한해 한시적으로 최저임금을 보전해 주고 있는데 지원기간이 끝나면 이들 기업은 어떻게 하나.

근로시간 단축의 경우 줄어드는 임금은 어쩌나. 지금까지 시간외 수당 등으로 받던 임금이 근로시간 단축으로 줄어들 텐데, 기업에 원래 주던 임금을 그대로 주라는 것인가. 기업이 갑자기 지급 능력이 생겼다는 것인가. 근로시간이 축소된 만큼 임금도 줄어들면 근로자 생계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것도 정부가 한시적으로 지원한다면 지원기간이 끝나면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경직성 때문에 비정규직이 늘어났는데, 그 문제를 개선하지 않고 정규직화를 강제하면 기업은 감당할 수 없다. 기존 근로자의 고용 조정을 강화하고 신규 채용도 대폭 줄일 것이다.

최근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을 보면 정부 능력을 과신하고 시장 기능은 무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진보주의자들이 범하는 과오다. 정부가 규제하면 기업이나 국민은 무조건 순응할 것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한다. 기업은 정부기관이나 자선사업단체가 아니라 영리 추구 조직이다. 기업은 정부가 법령으로 강요해도 그것을 지키는 것이 도움이 되면 순응하지만 손해를 볼 경우 다른 대안을 찾는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의 친노동 정책들은 고용비용을 증가시켜 오히려 고용을 기피하게 만들고 있다. 기업은 사람을 뽑기보다 로봇을 들여놓고 고용이 적은 산업으로 전환하거나, 인건비가 싼 해외로 이전을 생각하고 있다. 대부분 기존 근로자 처우 개선에 치중돼 있기 때문에 신규 고용이 더욱 줄어 청년 실업의 악화를 초래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월 기준 임시직과 일용직 근로자는 작년보다 11만 명 감소했다. 최하위 20% 계층의 1분기 소득은 작년보다 8% 감소했고, 하위 20~40% 계층 소득은 4% 감소했다. 저소득층이 더 어려워졌다.

고용을 늘리기 위해서는 기업 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기업이 돈을 더 벌도록 여건을 마련해 준 뒤 근로자 몫을 늘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규제 개혁,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창업 활성화 등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예컨대 데이터 수집·활용에 관한 규제만 혁신해도 핀테크(금융기술) 등 서비스산업에서 많은 일자리가 생길 것이다. 규제 개혁은 쉽지 않은 과제이지만 정부 의지만 있으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경제에 공짜는 없다.

최저임금 인상 등 친노동 정책도 필요하다. 그러나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더 키워서 황금알을 계속 낳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