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강의하기가 이렇게 괴로워서야
요즘은 대학 강단에서 강의하기가 무척이나 힘들고 괴롭다. 정년 퇴임을 하고도 후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무슨 푸념이고, 무슨 불평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30여 년 해온 강의에는 희열까지 느끼지만 강의 내용을 현실에 구현하고자 하는 데에 이르면 자괴감에 시달릴 정도다.

경제학은 경세제민(經世濟民)의 학문이기에 인간과 사회의 기본 원리에 대한 내용이 강의에서 빠질 수 없다. ‘인간은 정직해야 하고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인간관계의 중심은 이(利)보다 의(義)에 둬야 한다’ ‘대한민국은 법치에 기초한 민주주의 국가다’ ‘국가는 구성원의 생명과 재산, 자유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등은 인간과 사회의 기본 원리다. 학생들이 이 기본 원리를 이해하도록 가르쳐야 하고 현실에서 실행·구현하도록 진지하게 독려해야 한다.

문제는 강의실에서의 배움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것에 더해 전혀 다른 잘못된 모습이 횡행하는 데 있다. 이 나라 지도자들의 행태를 보면 정직과 의를 학생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를 정도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고, 국민에게 법을 준수하라면서도 자신은 무법, 불법, 탈법, 편법을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지도자들에게서 학생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겠나.

인간이란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듣고 보는 바를 더 확실하게 받아들이게 돼 있다. 젊은 학생들은 더욱 그렇다. 지도자들이 이(利)에 따라 이합집산하고 거짓말을 식은 죽 먹기처럼 하는 현실에서 학생들에게 정직하게 살고 의를 지키라고 외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한 시대에 귀감이 되는 인물은 윤리적 열정과 도덕적 순수함을 가지고, 강한 집념으로 자기 분야에서 그 무엇을 성취하고, 그 결과 사회에 봉사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이와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다. 인품, 명예, 자존심 등은 헌신짝처럼 버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와 권력을 얻는 것이 우리 사회 성공적 인생의 표본이 된 지 오래다. 이런 상황이니 강단에서의 강의는 무용지물이 아닌가.

이 나라의 좌파세력은 스스로 민주투사임을 내세운다. 상당수가 반(反)정부, 반미 활동한 것을 가지고 민주화 투쟁을 했다며 억지를 부린다. 이들이 주축을 이룬 현 정부의 국정 운영은 민주주의와는 참으로 거리가 멀다. 민주주의와 촛불 혁명은 궤를 같이할 수 없는 것인데 촛불 혁명을 앞세워 국제적 망신을 자초하고 있다. 삼권분립 정신은 훼손되고 법치주의는 말뿐이며 개헌도 절차나 내용에서 반민주적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우리가 민주주의를 하고 있다고 가르칠 수 있을까.

국가는 왜 존재하고, 그 역할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선 국민은 물론 지도자들도 인식이 크게 부족하다. 국가는 복지를 하기 위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자유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북한이 핵으로 국민 전체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데도 남북 평화만 외칠 뿐 북에서 고통받는 수많은 납북자들의 생환은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자국민 몇 사람을 데려오기 위해 평양으로 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북·미 대화의 선결 요건으로 억류 미국인의 석방을 내세운다. 북한 동포의 인권과 수많은 피랍자 이야기는 세 번에 걸친 남북회담에서 왜 한 번도 의제가 되지 않았을까.

미국 건국 초기에 대통령의 임기 제한이 없었음에도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왕으로의 추대를 거부하고 8년 봉직 후 스스로 물러났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60만 명이 죽은 내전에서 승리했으나 단 한 명도 전범으로 처리하지 않았으며 패배한 남부에 책임을 묻지도 않았다. 실업률이 25%에 달한 대공황이 발생해 국민이 고통을 겪는 현실에서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허버트 후버 전임 대통령의 실정을 일절 비판하지 않고 노고를 치하했다. 황제 추대를 거절한 워싱턴, 정적인 상대방을 비난하기는커녕 국민 모두를 보듬고 자신의 소임만 묵묵히 수행한 링컨과 루스벨트, 이들이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었다. 사회의 기본원리가 현실에서 실현되고 훌륭한 지도자들을 가져 강단에서 자괴감 없이 강의하는 날은 언제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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