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수십조원에 달하는 중소기업 지원자금이 특정 기업에 중복 지원됐고, 이 과정에서 전문브로커들이 개입해 자금을 나눠먹고 있다는 게 사실로 드러났다. 중소벤처기업부가 2010년부터 2017년까지 8년간 정책자금 집행내역을 조사한 결과 연구개발예산을 10회 이상 받아간 기업이 107개나 됐다. 게다가 21개사는 오히려 매출이 줄어들었다. 또 정책자금을 받도록 도와주면서 수령 자금의 최대 10%를 성공수수료로 받아간 전문브로커도 대거 적발됐다.

중소기업계에서 중기 정책자금을 ‘눈먼 돈’이라고 부르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부실한 심사로 정책자금에 의존해 연명하는 ‘좀비기업’을 양산하고, 정작 자금이 필요한 유망 기업은 외면한다는 비판도 많았다. 지난해만 해도 정부의 정책자금을 받은 기업 중 2회 이상 받은 기업이 절반에 가까운 46.6%나 됐다. 브로커 문제도 끊임없이 보도됐던 사안이다. 지금도 포털사이트에서 ‘정책자금 컨설팅’이라고 치면 수많은 업체가 검색된다. 브로커가 너무 활개를 치자 중소기업청 시절 전자서명제도를 도입해 제출서류를 간소화하고, 브로커 신고자에게 포상금을 내걸기도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중기부가 이제야 브로커들을 수사 의뢰하고, 정책자금 지원성과에 대한 평가체제를 다시 만들겠다고 나선 것은 너무 ‘뒷북’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중기 정책자금을 둘러싸고 많은 문제가 나오는 것은 그만큼 제도가 복잡하면서도 허술하기 때문이다. 지원시스템을 단순화하고 자금 집행의 투명성과 사후 관리도 더 강화해야 한다. 연구개발 자금의 경우 과제만 해결하면 정부에 원금을 갚을 필요가 없다는 점을 악용해 과제 선정부터 결과 보고까지 ‘턴키’로 해결해주는 브로커도 있었다고 한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정부 예산이 이렇게 줄줄 새는 건 중기 정책자금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중앙부처는 물론이고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지원금도 브로커들의 먹잇감이 됐다는 보도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집행된 정부보조금만 60조원 가까이 된다. 중기 정책자금 부실운영 고백을 계기로 정부의 지원자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를 전방위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