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기본소득 외치던 분들 핀란드 실패 보셨는지
핀란드가 기본소득 제도를 포기했다고 한다. 소득이 많건 적건, 재산이 많건 적건, 일을 하건 하지 않건, 정부가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균등하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제도다. 유토피아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의미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기본소득 제도를 도입한 나라는 아직 한 곳도 없다. 핀란드도 무작위로 선발된 2000명을 대상으로 1년여 테스트했을 뿐이다. 지방정부 차원에서 제도를 실시하는 곳이 있기는 하다. 미국의 알래스카주다. 오지의 얼마 되지 않는 주민들이 지천으로 솟아나는 석유를 감당하지 못하는 곳이다. 아프리카 나미비아에 성공 사례가 있다며 거품을 뿜는 사람들이 있는데 지금 나미비아에 그런 곳은 없다.

그런데도 마치 시대에 뒤진 것처럼 유독 호들갑을 떠는 한국의 이상주의자들이다. 맨손으로 유토피아를 만들어보겠다며 유권자를 오도하는 사람들이다. 지난해 대선 때가 그랬고, 지방선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몇몇 후보는 이미 기본소득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표를 끌어모으고 있다. 포퓰리즘도 이런 포퓰리즘이 없다.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핀란드의 기본소득을 인용하면서 가장 중요한 팩트 몇 가지를 숨겨왔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본소득과 같은 복지제도를 도입하는 건 좌파 정부다. 지금 우리가 그런 경우다. 하지만 핀란드는 우파 정부가 이 제도를 도입하려 했다. 무슨 이유에설까.

핀란드 총리는 제도의 시범 운용에 들어가면서 기본소득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사회보장체계를 간소화한다는 뜻’이라고 말이다. 그냥 돈을 주겠다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제공하던 웬만한 복지 혜택을 줄이거나 없애고, 그 예산을 개인에게 나눠줄 테니 스스로 알아서 복지를 선택해 지출하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줄줄 새는 복지예산을 막아보자는 의도였다. 복지예산이 늘어나면 투입되는 공무원 수는 더 빠르게 증가한다. 생각해보라. 한국에서도 기초수급 대상자를 선정하는 작업에만도 얼마나 많은 공무원들이 투입되는지. 기본소득 제도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금액이 지급된다. 소득 증빙이나 자격요건 심사와 같은 복지행정이 사라진다는 얘기다. 모든 국민에게 똑같은 금액을 통장에 넣어주면 그뿐이다. 극히 소수의 복지 공무원만 필요하다. 작은 정부다. 공무원들과 노동조합이 반발한 이유다.

놀고먹는 실업자를 없애보자는 것도 중요한 노림수였다. 핀란드는 굳이 저임금 일자리에서 일하느니 실업수당을 받는 게 이득인 나라다. 실업수당 같은 기존 복지 혜택을 폐지하고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사람들은 저임금 일자리라도 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계산이 나올 수 있다. 기본소득은 직업이 있어도 지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핀란드 정부의 판단은 빗나갔다. 사회보장 혜택은 나이에 따라 달라지도록 설계돼 있는데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금액을 지급하려다 보니 세금을 더 거두지 않고선 방법이 없다. 애초 계획대로 한 사람당 월 800유로(약 100만원)를 기초소득으로 나눠준다면 매년 470억유로라는 돈이 필요하다. 핀란드의 2016년 재정 수입은 491억유로다. 대부분이 기본소득에 투입돼야 한다는 얘기다. 지속 가능하지 않다.

게다가 시험 대상 가운데 상당수가 기본소득을 받고도 일은 하지 않고 집으로 숨어들어 게임이나 즐기려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구직 의무도 무시한 채 말이다. 이 제도가 빈곤층에 오히려 불리하다는 보고도 있다. 스위스가 기본소득 도입을 국민투표에 부쳐 부결시켰고, 독일이 논의 단계에서 없었던 일로 폐기한 이유다.

한국 정치인들의 주장은 공적 사회보장 제도는 그대로 둔 채 추가적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터무니없다. 그런데도 핀란드를 보라고 외쳤다. 출발점부터 다르고 지향점도 다른데 말이다.

한 번 풀어놓은 복지 보따리는 결코 줄일 수 없다. 핀란드의 기본소득 시도가 남긴 교훈이다.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적절한 조건부 복지야말로 복지 혜택을 더 확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알래스카처럼 석유나 펑펑 쏟아진다면 모르겠다. 이를 복지포퓰리즘이 아니고 뭐라고 불러야 하겠는가. 핀란드가 기본소득 제도 도입을 포기했다는 소식에 우리 정치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