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김동연, 소신과 눈치 사이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 시절 국무조정실장을 그만둔 건 소신을 펼칠 여건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지금 문재인 정부에서 소신을 펼치고 있을까.

김 부총리는 인사청문회 때부터 “법인세 명목세율 인상은 없다”고 수차례 말했다. 결과는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으로 나타났다. “당과 청와대가 얘기하면서 그렇게 됐다”는 게 그의 해명이었다. 법인세 인상 후 나온 발언은 이랬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높이면서 과세표준을 2000억원에서 3000억원 초과로 늘려 77개 기업만이 최고세율 대상이다.” 해당 기업이 소수여서 별 영향이 없다는 얘기였다.

기업 수로 비교할 게 따로 있지, 김 부총리는 77개 기업이 차지하는 법인세 비중이 얼마인지, 최고세율 인상이 초래할 기업의 신규투자 위축 가능성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법인세 단일세율과 인하 흐름, 수출 비중이 높은 국가일수록 낮은 법인세율 경향 등 글로벌 트렌드에도 침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신 김 부총리는 “기업투자 결정에는 법인세 말고 더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이 있다”며 노동시장, 규제개혁 등을 언급했다. 하지만 노동시장, 규제개혁도 거꾸로 가는 마당이다.

김 부총리가 말하는 혁신성장도 갈수록 공허하게 들린다. ‘4차 산업혁명과 혁신성장’이라는 주제의 부처 합동 업무보고 자리에서 그가 말한 ‘하얀 스케이트식 혁신’은 기업인 사이에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는 규제혁신의 가장 큰 과제는 “진입장벽을 치는 기존 업계, 전문직 단체 등 기득권의 반발”이라고 강조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김 부총리 해법은 “가장 큰 이해당사자인 국민이 참여하는 공개적인 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체이탈’도 유분수지, 국민을 대신해 그런 기득권을 타파하라고 있는 존재가 정부 아닌가.

그는 강연을 할 때마다 ‘킹핀이론’을 소개한다. “잘못된 사회보상체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보상체계 왜곡의 진원지이자 기득권의 뒷배가 돼주는 주범도 정부요, 정치라고 해야 맞는다.

최저임금 인상 문제에 이르면 김 부총리가 경제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가 하는 의문마저 생긴다. 그는 지난 2월에 이어 3월 취업자 수가 10만 명대로 둔화된 것을 두고 “최저임금 인상 영향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지표가 좋았던 작년 동기 대비 기저효과, 조선업 구조조정 등이 주된 요인이라는 주장이다.

‘소득주도성장론’을 지키겠다고 현실과 동떨어져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말이 여기에 딱 맞지 싶다. 일자리안정자금이라는 혈세를 끌어다 그 난리를 쳤어도 이 지경인데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도 올해처럼 하겠다는 신호를 보내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기재부는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답을 미리 내놓고 분석한다는 말로 들린다.

김 부총리는 국회에서 “경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올해 들어 대통령과 정례회동도 하고 있다. 하지만 말이나 회동이 컨트롤타워를 증명하지는 못한다. 기재부 관료가 “청와대 들러리”라고 푸념할 정도면 그런 컨트롤타워는 의미가 없다.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정상외교에 따라 나서는 걸 봐도, 함부로 자리를 비워서는 안 되는 경제 컨트롤타워인지 의심스럽다.

다른 부처에서는 “정부는 ‘기재부’와 ‘기타’로 나뉜다”는 볼멘소리도 터져 나온다. 함량 미달 장관이 한둘이 아닌 건 안다. 그렇다고 부총리 혼자 일 다 하는 것처럼 나서는 것도 썩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그럴 바에는 경제부처를 통폐합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컨트롤타워의 핵심은 ‘리더십’과 ‘전문성’이다. 소신이 있다면 현실을 직시하고 대통령에게 직언해야 한다. 앞 정권이 눈치 보는 ‘예스맨’의 집단사고로 망했다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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