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北核 폐기에 집중할 때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2018년 신년사는 ‘신의 한 수’였다. 지난해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도발로 야기된 국제공조 제재와 압박을 단숨에 유화 모드로 전환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유화 모드는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 북한 예술단의 강릉·서울 공연, ‘봄이 온다’라는 부제(副題)가 붙은 우리 예술단의 평양 공연으로 이어졌고, 남북한 정상회담의 주제를 ‘평화, 새로운 시작’으로 결정하는 동력이 됐다. 또 1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남북 간 종전(終戰) 논의 축복”이란 뜻밖의 메시지까지 끌어내는 상황에 이르렀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시기를 양측 간 원활한 협의를 전제로 ‘6월 초 또는 그 이전’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의 측근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 내정자 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지난 부활절 주말(현지시간 3월31일~4월1일)에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다고 전했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반도 정세가 긍정적으로 흘러가는 듯한 모양새다.

그러나 북한 매체는 핵보유를 국가전략으로 포장해 “핵은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지속적으로 밝혀 왔다. 김정은 신년사의 골자는 ‘핵이 있는 상태에서의 대화와 경협’인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유화 모드에 취해 북핵 문제의 심각성을 잊고 있는 듯하다. ‘북핵 폐기’라는 남북 정상회담 본래의 목적이 사라지지 않았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북한의 유화 노선은 민족공조를 앞세워 ‘핵·경제 병진발전전략’을 완성하려는 전술적 행보다. 국제공조의 제재 상황에서 벗어나면서 의지할 수 있는 한국의 지원과 협력을 통해 ‘제2의 고난의 행군’ 가능성을 극복하겠다는 계산이다. 그런데도 ‘봄이 온다’, ‘평화, 새로운 시작’과 같은 말의 성찬으로 인해 정상회담 개최의 본질이 희석되고 있는 것은 문제다. 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 북핵 폐기가 의제로 다뤄지지 않더니, 청와대는 다시 대북특사의 방북을 통해 의제를 조율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는 지난 3월 방북 특사단이 합의한 ‘북한 비핵화’를 소홀히 했다는 방증이다.

북한은 비핵화를 북핵 폐기가 아니라 1986년 김일성의 ‘비핵지대화(nuclear free zone)’로 본다. “북핵은 자위용(自衛用)이기 때문에 북핵 폐기보다 먼저 북한 체제를 위협하는 핵전략자산의 문제가 우선 해결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최소한 ‘국제적 핵감축’의 틀 속에서 핵문제를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게 비핵지대화의 논리다. 결국 비핵지대화는 북한 핵개발을 정당화하는 논리였고, ‘선대의 유훈’으로 호도돼 협상테이블에서 선물을 챙기는 수단으로 악용돼 왔다. 선대의 유훈은 핵 폐기가 아니라 ‘국가 핵무력 완성’이라는 점을 직시하고 적극적 대응방안을 찾아야 한다. 북핵 문제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단계적, 점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절대 아니라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이후 국제사회는 ‘제네바 합의’ 등 5차례의 합의를 도출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는 북핵 폐기의 전제조건과 함께 단계적 절차 과정에서 검증이 전혀 진척되지 않은 결과다. 핵무력이 완성된 상황에서 북한이 검증을 지연시킬 경우 시간벌기와 함께 핵물질(핵탄두)과 제조시설을 은폐해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이제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의 초점은 완전한 북핵 폐기에 모아져야 한다. 이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끊은 것과 같은 일괄타결 방식이어야 한다. 그 기간은 1~2년의 단기여야 하며, 북핵 폐기가 확인될 때까지는 지금과 같은 국제공조의 최대한 압박과 제재는 지속돼야 한다. 그래야만 북핵 폐기가 이뤄지고 한반도의 진정한 종전 평화도 달성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