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시리아와 북한의 화학무기
1차 세계대전은 대량살상무기가 급진전된 계기였다. 치명적인 화학무기도 이때 실전에 많이 쓰였다. 무수한 희생에 대한 두려움과 반성에서 1925년 ‘제네바 의정서’가 제정됐다. ‘전쟁에서 질식성, 독성 가스의 사용을 금지하자’는 내용이었다.

많은 국제협약이 그렇듯, 당위론이 강할수록 그대로 지켜지기가 어려웠다. 염소·사린가스, 고엽제, 신경작용제라는 치명적 유독물질들이 크고 작은 분쟁지역에서 쓰였다는 고발과 증언이 제네바 의정서 이후에도 계속 나왔다. 결국 1975년 생물무기금지협약(BWC)이 발효됐다. 140개국 이상이 서명했지만 효율적인 검증장치가 없는 게 한계였다. 24년에 걸친 협상으로 1997년에는 화학무기금지협약(CWC)이 발효됐다. ‘전쟁 사용금지’라는 제네바 의정서를 넘어 화학무기의 전면적 사용금지와 폐기를 지향하는 국제 협정이었다.

미국이 프랑스 영국과 함께 시리아 화학무기 시설에 미사일을 퍼부은 것도 이런 국제협약에 근거한다. 미국이 성명, 언론 브리핑, 기자회견에서 강조한 것도 ‘화학무기의 생산 사용 확산에 대한 강력한 억지력 확립’이었다.

지중해의 구축함과 잠수함에서 발사한 미사일공격을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엘리제궁 지하 벙커에서 최고위급 안보 관계자들과 함께 지켜봤다. 메르켈 독일 총리도 미·영·불의 작전에 바로 지지성명을 냈다. 반면 오랫동안 시리아의 현 정권을 지원해온 러시아와 이란은 격하게 미국 등 3국을 비난했다. 중국도 시리아를 편들고 나섰다. 시리아의 화학무기로 또 하나의 대립되는 국제적 진영 구도가 형성됐다.

시리아 내전은 이달로 만 7년째다. 이번에 서방국가들이 던진 메시지는 화학무기의 사용을 묵과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국제협약을 위반한 전쟁범죄라는 것이지만, 확산은 쉽고 통제는 잘 안 되는 생화학무기의 치명적 위험 때문이다. 지난 7일 시리아 정부군의 반군거점 공격 때 70여 명이 숨졌고 수백 명이 다친 것에서 화학무기의 위험성은 거듭 드러났다.

시리아의 화학전은 남의 일이 아니다. 화학무기에 대한 경각심과 폐기 노력은 우리에게도 절실하다. 지금은 핵폐기가 최대 현안이지만, 북한의 화학전 역량에 대한 정보도 충분하지 않다. 종종 미국 일본에서 전해오는 화학무기 배치 경고가 있고, 북한이 미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 보유국이라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청와대가 탄저균 백신을 구입한 배경을 두고 논란이 일었을 때는 북한의 탄저균 공격 역량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그때뿐이었다. 김정남 피살 때 검출된 맹독물질 VX는 CWC에서 제조가 금지된 물질인 데다 안보리가 결의한 대량살상무기의 한 종류라는 점에서 놀라움을 줬다. 핵탄두뿐 아니라, 머리 위에 어떤 형태든지 화학무기를 둔 채로 평화를 말할 수는 없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