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유리천장 허물기
작년 ‘세계 여성의 날’(3월8일)을 하루 앞둔 7일, 뉴욕 월스트리트의 ‘돌진하는 황소(Charging Bull)상’ 앞에 ‘겁 없는 소녀(Fearless Girl)상’이 등장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겁 없는 소녀상은 미국의 한 투자회사가 뉴욕 증권가에서 여성 임직원의 낮은 비율과 남녀 임금 불평등을 고발하고 이를 바로잡자는 취지로 한 달 동안만 설치할 예정이었으나,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 설치 기간이 연장됐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여성의 사회 진출이 본격화된 지 오래됐음에도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 장벽에 막혀 좌절하는 경우가 많아 유리천장이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는 어느 나라나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의 상황이 더 좋지 않은 듯하다.

국제무역연구원이 발간한 ‘2017 세계 속의 대한민국’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여성 이사회 임원 비율은 2.4%로 조사대상 국가인 46개국 중 45위에 불과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조사한 ‘유리천장지수’에서도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였다고 한다. 뿌리 깊은 성(性) 역할 구분, 남성중심적 기업문화, 여성의 능력과 리더십에 대한 불신 등으로 여성의 임원 승진이 이례적인 일로 인식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결과다.

최근 들어 세계 각국은 유리천장을 깨기 위한 노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은 상장기업이 주주에게 여성 임원을 뽑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도록 하는 기업 지배구조 지침 개정을 추진 중이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는 이미 여성 임원 할당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처럼 국가가 적극 나서는 이유는 여성의 역할 확대가 기업 경쟁력과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사회 내 여성 임원이 있는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실적뿐 아니라 경영의 투명성 측면에서 더 좋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고, 기업가치 평가에 여성의 경영 참여 여부를 고려하는 투자자도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이제 한국도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능력에 따라 평가받는 환경을 갖춰나가야 할 것이다. 이전보다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도 여성에게 편중된 육아와 가사부담,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성차별 관계 등에 대한 불평등한 인식과 제도를 개선해 합리적인 업무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기회가 주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